석달 전엔 '주린이'였지만…이젠 애플·MS주식 직구 [김과장 & 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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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부동산 시장 '큰 손' 꿈꾸는 2030
"부동산 막차 타자"…주말 나들이 겸 매주 현장 답사
"부동산 막차 타자"…주말 나들이 겸 매주 현장 답사
“가난한 젊은이들은 투자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가치 투자의 창시자로 손꼽히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증시가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김과장이대리들도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주식거래활동 계좌 수는 3207만 개로 작년 말(2936만 개)보다 약 260만 개, 10% 가까이 늘었다. 신규 참여자 중 20~30대가 절반을 넘는다.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 맡겨놨거나 주식을 판 뒤 찾지 않은 투자자예탁금은 작년 말 27조4000억원에서 지난달 46조8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새내기 투자자들(cub investors)이 한국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20~30대를 지목했다. 증시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김과장이대리들이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동산 ‘불장’(불같이 뜨거운 상승장)이 계속되면서 시장에 속속 참여하고 있다.
대기업 입사 2년차인 최 사원은 최근 생애 첫 대출을 받아 SK바이오팜 공모주에 청약했다. 대출금과 비상금을 합쳐 5000만원을 청약 증거금으로 넣어 6주를 받았다. 최 사원은 “3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다음날 매도 타이밍을 잡다가 팀 회의에 늦었다”면서도 “다섯 배 가까이 올라 팀장의 질책에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고 말했다.
‘주린이(주식+어린이)’로 시작해 해외주식으로 투자 대상을 넓힌 김과장이대리들도 적지 않다.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심 과장은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 국내 주식 절반을 최근 처분하고 미국 주식에 직접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는 “코스피지수가 2100을 넘으면서 당분간 박스권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미국 나스닥 종목에 직접 투자해보기로 했다”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익숙한 회사들 위주로 주식을 샀다”고 말했다.
문제는 줄어든 수면시간. 미국 증시가 열리는 시간은 밤 10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다. 그는 “낮에는 한국 증시, 밤에는 미국 증시까지 밤낮으로 투자한 기업의 주가 움직임만 보고 산다”며 “그래도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어 피곤함이 덜하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다니는 박 대리는 ‘아는 것이 힘’과 ‘모르는 게 약’이란 격언 가운데 후자를 더 신봉하게 됐다. 직업상 업계의 속사정과 수익 구조를 잘 아는 게 투자할 때 되레 독이 됐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엔터주 랠리가 이어졌지만 박 대리는 전혀 수익을 내지 못했다. 그는 “엔터주를 추천해달라는 친구 몇 명에게 매수를 말렸다가 ‘어떻게 비전문가인 나보다 모르느냐’고 핀잔을 들었다”며 “주가는 일정 부분 기대감으로 움직이는데 이를 공감하지 못하니 업계 종사자면서도 돈을 벌기 어려운 것 같다”고 푸념했다.
중견 출판업체에 다니는 조 차장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지난 2월 “유가는 앞으로 오를 일만 남았다”며 원유 선물 상품을 매수했다. 그 뒤로 가격이 내려갈 때마다 추가 매수로 ‘물타기’를 했지만 지난 4월 20일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한때 수익률이 -60%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다행히 원유 가격이 조금씩 올라 간신히 원금 수준까지 회복했지만 그동안 속이 다 타버려 재가 된 기분”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바이오 회사에 다니는 김 과장은 여름휴가 동안 부동산 실전투자 강의를 듣기로 했다. 하루에도 수천만원씩 치솟는 아파트 가격을 보고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고 결심했다. 그는 “어차피 해외 여행도 못 가는 상황이라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기업 직원인 나 대리는 최근 주말마다 회사 동기 2명과 함께 아파트 ‘임장’(臨場·현장 답사)을 다니고 있다. 지하철역부터 아파트 단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주변에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둘러본 뒤 임장을 간 지역의 맛집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잔을 하고 헤어지는 게 주말 일과가 돼 버렸다. 나 대리는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만 하다 보니 아직 어떤 지역이 좋은지 잘 몰라 동기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며 “조만간 ‘부모님 찬스’까지 대출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해 아파트를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통기업에 다니는 최 대리는 부동산 이야기만 나오면 조용히 대화에서 빠지고 있다. 그는 입사 초기였던 2015년 서울에 집을 사려고 했다가 포기했다. 공인중개업소에선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을 모두 합치면 80%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포기했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대출이 너무 많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2017년부터 상승세가 시작돼 고공행진이 계속됐다. 최 대리가 봤던 아파트의 가격은 당시보다 두 배 이상 뛰었다. 그는 “내가 돈을 모으는 속도보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 지금은 거의 포기 상태”라며 “이번 생에 서울에 집을 사는 건 힘들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증시가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김과장이대리들도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주식거래활동 계좌 수는 3207만 개로 작년 말(2936만 개)보다 약 260만 개, 10% 가까이 늘었다. 신규 참여자 중 20~30대가 절반을 넘는다.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 맡겨놨거나 주식을 판 뒤 찾지 않은 투자자예탁금은 작년 말 27조4000억원에서 지난달 46조8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새내기 투자자들(cub investors)이 한국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20~30대를 지목했다. 증시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김과장이대리들이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동산 ‘불장’(불같이 뜨거운 상승장)이 계속되면서 시장에 속속 참여하고 있다.
‘주린이’가 석 달 만에 해외주식까지
사무실에서 스마트폰으로 주식창을 보고 있을 때 예전 같으면 “업무 시간에 딴짓을 한다”고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요샌 “좋은 종목 좀 없냐”며 대화의 물꼬가 터지는 일이 많다. 한 특허법인에 근무하는 2년차 김 변리사는 올 들어 “나만 알고 있을 테니 괜찮은 기술을 보유한 회사 좀 알려달라”는 지인들의 요청을 많이 듣는다. 그는 “저금리 시대에 월급을 차곡차곡 쌓아만 두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는 것 같다”며 “조금이라도 ‘핫’한 정보를 듣고 주식 열풍에 올라타려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대기업 입사 2년차인 최 사원은 최근 생애 첫 대출을 받아 SK바이오팜 공모주에 청약했다. 대출금과 비상금을 합쳐 5000만원을 청약 증거금으로 넣어 6주를 받았다. 최 사원은 “3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다음날 매도 타이밍을 잡다가 팀 회의에 늦었다”면서도 “다섯 배 가까이 올라 팀장의 질책에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고 말했다.
‘주린이(주식+어린이)’로 시작해 해외주식으로 투자 대상을 넓힌 김과장이대리들도 적지 않다.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심 과장은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 국내 주식 절반을 최근 처분하고 미국 주식에 직접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는 “코스피지수가 2100을 넘으면서 당분간 박스권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미국 나스닥 종목에 직접 투자해보기로 했다”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익숙한 회사들 위주로 주식을 샀다”고 말했다.
문제는 줄어든 수면시간. 미국 증시가 열리는 시간은 밤 10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다. 그는 “낮에는 한국 증시, 밤에는 미국 증시까지 밤낮으로 투자한 기업의 주가 움직임만 보고 산다”며 “그래도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어 피곤함이 덜하다”고 말했다.
“이제 오른다”던 유가, 마이너스가 웬 말
최근 상승장이 계속됐지만 모두가 수익을 낸 건 아니다. 남들이 들어갈 때 나오고, 빠질 때 시작하는 ‘마이너스의 손’들도 있기 마련.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다니는 박 대리는 ‘아는 것이 힘’과 ‘모르는 게 약’이란 격언 가운데 후자를 더 신봉하게 됐다. 직업상 업계의 속사정과 수익 구조를 잘 아는 게 투자할 때 되레 독이 됐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엔터주 랠리가 이어졌지만 박 대리는 전혀 수익을 내지 못했다. 그는 “엔터주를 추천해달라는 친구 몇 명에게 매수를 말렸다가 ‘어떻게 비전문가인 나보다 모르느냐’고 핀잔을 들었다”며 “주가는 일정 부분 기대감으로 움직이는데 이를 공감하지 못하니 업계 종사자면서도 돈을 벌기 어려운 것 같다”고 푸념했다.
중견 출판업체에 다니는 조 차장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지난 2월 “유가는 앞으로 오를 일만 남았다”며 원유 선물 상품을 매수했다. 그 뒤로 가격이 내려갈 때마다 추가 매수로 ‘물타기’를 했지만 지난 4월 20일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한때 수익률이 -60%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다행히 원유 가격이 조금씩 올라 간신히 원금 수준까지 회복했지만 그동안 속이 다 타버려 재가 된 기분”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파트 ‘임장’으로 주말 나들이
김과장이대리들에게 부동산은 늘 뜨거운 주제다. 요즘은 더 그렇다. 부동산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지금이 ‘막차’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관심을 두게 된 김과장이대리들이 많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 아파트 매수자 가운데 30대 비중이 30.7%로 가장 높았다.바이오 회사에 다니는 김 과장은 여름휴가 동안 부동산 실전투자 강의를 듣기로 했다. 하루에도 수천만원씩 치솟는 아파트 가격을 보고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고 결심했다. 그는 “어차피 해외 여행도 못 가는 상황이라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기업 직원인 나 대리는 최근 주말마다 회사 동기 2명과 함께 아파트 ‘임장’(臨場·현장 답사)을 다니고 있다. 지하철역부터 아파트 단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주변에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둘러본 뒤 임장을 간 지역의 맛집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잔을 하고 헤어지는 게 주말 일과가 돼 버렸다. 나 대리는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만 하다 보니 아직 어떤 지역이 좋은지 잘 몰라 동기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며 “조만간 ‘부모님 찬스’까지 대출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해 아파트를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통기업에 다니는 최 대리는 부동산 이야기만 나오면 조용히 대화에서 빠지고 있다. 그는 입사 초기였던 2015년 서울에 집을 사려고 했다가 포기했다. 공인중개업소에선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을 모두 합치면 80%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포기했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대출이 너무 많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2017년부터 상승세가 시작돼 고공행진이 계속됐다. 최 대리가 봤던 아파트의 가격은 당시보다 두 배 이상 뛰었다. 그는 “내가 돈을 모으는 속도보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 지금은 거의 포기 상태”라며 “이번 생에 서울에 집을 사는 건 힘들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