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토론 첫 주제는 그린벨트 정책?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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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중국에만 폭우를 뿌리고 한국엔 장마전선이 왔는지 갔는지 감감하다. '마른 장마' 때문인지 열대야도 그리 자주 나타나지 않고,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짜증을 키우는 '열대야'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그린벨트 논쟁 열대야'다. 대통령이 나서 정리되는 모양새가 됐지만, 대선 후보경쟁 전초전이 벌써 시작됐나 싶을 정도로 낯설다. 장마 때 비와 땀으로 들러붙은 옷 마냥 영 찜찜하다.
정세균 총리는 며칠 전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법적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이란 묘한 말까지 했다. 그린벨트 관련 결정권이 중앙정부에 있을지라도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이견의 간극을 좁히지 않고 일방 결정해선 안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박원순 유지를 지켰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이니 정 총리가 잃은 건 없어보인다. 대통령 체면만 구긴 셈이 됐다.
그린벨트 관련 결정권은 법적으로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갖고 있다. 개발제한구역법 제3조에는 '국토교통부 장관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여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략…)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해제를 도시·군관리계획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린벨트 도입(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은 물론, 처음으로 풀기 시작한 때(김대중 전 대통령 때)에는 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나머지 경우엔 대통령까지 나설 정도로 논란이 된 적은 별로 없었다. 특히 그린벨트 정책이 경제정책 영역에 속한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정책역량이 이것밖에 안되는지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과거 행정수도 이전 논의의 단초가 수도권 과밀화였고, 해소법이 바로 국토균형발전이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이 인용하는 얘기가 있다. '지난 100년간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2.4도 증가했다. 세계 평균의 3배다. 서울의 온열질환자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수도권 과밀화가 지구온난화랑 연결되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세종시 이전 등 균형발전에 노력해야 한다는 논리다. 수도권 과밀화가 집값 급등까지 불렀으니, 과밀화 요인을 해소하면 주거안정까지 이룰 수 있는 양수겸장이란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엄청난 국론분열과 갈등을 초래한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지금의 행정부처 이전으로 일단락된 이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게 불과 몇년 전이다.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할 때에 거대 여당 원내대표가 제기할 사안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슈전환용 발언이라는 평가가 나올만 하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마치 처음인양 엄청난 논란으로 확산된 걸까. 환경보호에 집착하는 진보진영의 해제 반대 때문만은 아니다. 집값 급등기여서 그린벨트가 부(富)의 분배 문제와 직결돼 버린 탓이다. 그린벨트 해제의 개발이익이 결국 민간 건설회사와 가진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란 좌파적 상상력이 진보쪽 사람들을 뭉치게 했다. 이들의 지지가 지금 정부는 물론, 차기 대선 양상까지 좌우하게 생겼으니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잠룡, 내지 자칭 잠룡이 벌떼같이 '해제 반대'에 나섰다. 결국 대통령도 거부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진보진영에선 그린벨트를 미래 세대를 위해 아끼고 남겨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눈에 바로 띄는 그린벨트 같은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해 훼손하면 안된다고 하고는, 똑같이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 될 적자재정을 퍼붓는 일은 쉽게 결정하는 게 이쪽 사람들 시각이다. 국가재정의 건전성은 눈에 잘 안띄고 일반인들이 무신경해서 그런 건 아닐까. 케인즈 얘기처럼 시장이 균형을 찾아가는 동안 우리는 다 죽게 되니, 우리 살았을 때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런 속내를 감추기 딱 좋은 명분이다.
이런 점에서 그린벨트는 환경론자들을 제외하고는 이념에 따라 시각이 갈리는 그런 용도의 땅은 아니다. 적지 않은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일리 있다. 그린벨트 보전의 목적이 무질서한 도시 학산을 막는다는 명분이지만, 위성도시가 발달하고 도시가 이미 팽창한 상황에서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천이나 부산의 경우 도시가 인접 농촌 지역으로 도시가 팽창하면서 도시 안에 그린벨트가 존재하는 곳도 있다. 또 그린벨트가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비닐벨트가 돼 버려 '그린 없는 그린벨트'란 지적도 있다. 그래서 도시계획 전문가들 중에는 벨트 방식이 아닌 존(zone) 방식으로 규제를 바꿔 토지 특성에 따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린벨트가 무슨 불가침의 절대적 성역도 아닌데 효율적인 개선 방안은 생각해볼 때가 됐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그린벨트 결정은 국토부 장관 권한
볼썽 사납기도 했던 것은 대통령까지 나서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꼴이 됐다는 점이다. 미리미리 사인을 주고 정리했으면 좋았을 것을…, 한참 교차로에서 차들이 엉켰는데 뒤늦게 출동해 정상 소통에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대선 잠룡들은 물론, 잠룡에 나도 끼워달라는 듯 자신의 업무와 아무 관련없는 장관까지 나서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철학을 앞다퉈 선명하게 내놓는 대선후보 TV토론을 보는 듯했다.정세균 총리는 며칠 전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법적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이란 묘한 말까지 했다. 그린벨트 관련 결정권이 중앙정부에 있을지라도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이견의 간극을 좁히지 않고 일방 결정해선 안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박원순 유지를 지켰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이니 정 총리가 잃은 건 없어보인다. 대통령 체면만 구긴 셈이 됐다.
그린벨트 관련 결정권은 법적으로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갖고 있다. 개발제한구역법 제3조에는 '국토교통부 장관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여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략…)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해제를 도시·군관리계획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린벨트 도입(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은 물론, 처음으로 풀기 시작한 때(김대중 전 대통령 때)에는 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나머지 경우엔 대통령까지 나설 정도로 논란이 된 적은 별로 없었다. 특히 그린벨트 정책이 경제정책 영역에 속한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정책역량이 이것밖에 안되는지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아닌 밤 홍두깨' 국회 등 세종시 이전
가장 황당하다고 할 상황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나왔다.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서울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이었다. 수도권 집값 안정을 위해 청와대·국회의 세종시 행(行)을 주장하니 '쌩뚱맞다' '행정수도 이전 관련 헌재 판결을 뒤집느냐' 등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과거 행정수도 이전 논의의 단초가 수도권 과밀화였고, 해소법이 바로 국토균형발전이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이 인용하는 얘기가 있다. '지난 100년간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2.4도 증가했다. 세계 평균의 3배다. 서울의 온열질환자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수도권 과밀화가 지구온난화랑 연결되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세종시 이전 등 균형발전에 노력해야 한다는 논리다. 수도권 과밀화가 집값 급등까지 불렀으니, 과밀화 요인을 해소하면 주거안정까지 이룰 수 있는 양수겸장이란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엄청난 국론분열과 갈등을 초래한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지금의 행정부처 이전으로 일단락된 이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게 불과 몇년 전이다.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할 때에 거대 여당 원내대표가 제기할 사안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슈전환용 발언이라는 평가가 나올만 하다.
◆그린벨트는 진보진영의 성역?
국민들 관념 속에 그린벨트는 오래된 개념 같지만,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불과 1938년 영국에서 '그린벨트법'이 만들어졌고 이후 세계 각국에 영향을 미쳤다. 도시의 평면적 확산을 방지하고 주변 환경을 보전한다는 취지다. 우리나라도 1971년 도입 이후 손을 댄 적이 거의 없다가 1999년 김대중 정부가 개선방안을 내며 그린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집값이 오르고 주택공급이 부족해질 것 같으면 경기도 또는 서울시내(이명박 정부 때 내곡동, 세곡동)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해 신도시, 미니신도시로 개발해왔다. 보수·진보 정권 가릴 것 없이 다 그랬다.그런데 왜 이제와서 마치 처음인양 엄청난 논란으로 확산된 걸까. 환경보호에 집착하는 진보진영의 해제 반대 때문만은 아니다. 집값 급등기여서 그린벨트가 부(富)의 분배 문제와 직결돼 버린 탓이다. 그린벨트 해제의 개발이익이 결국 민간 건설회사와 가진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란 좌파적 상상력이 진보쪽 사람들을 뭉치게 했다. 이들의 지지가 지금 정부는 물론, 차기 대선 양상까지 좌우하게 생겼으니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잠룡, 내지 자칭 잠룡이 벌떼같이 '해제 반대'에 나섰다. 결국 대통령도 거부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진보진영에선 그린벨트를 미래 세대를 위해 아끼고 남겨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눈에 바로 띄는 그린벨트 같은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해 훼손하면 안된다고 하고는, 똑같이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 될 적자재정을 퍼붓는 일은 쉽게 결정하는 게 이쪽 사람들 시각이다. 국가재정의 건전성은 눈에 잘 안띄고 일반인들이 무신경해서 그런 건 아닐까. 케인즈 얘기처럼 시장이 균형을 찾아가는 동안 우리는 다 죽게 되니, 우리 살았을 때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런 속내를 감추기 딱 좋은 명분이다.
◆문 정부도 3기 신도시 때 그린벨트 풀어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이전 정부와 달리 그린벨트에 손을 안댔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정부 들어서 발표된 3기 신도시(과천·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 인천 계양 등)는 대부분 경기도 지역 그린벨트를 풀어서 조성하고 있다. 작년엔 이들 신도시 개발을 위해 환경적 가치가 높은 멀쩡한 그린벨트를 대상지역에 넣은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8년에는 서울지역 그린벨트를 풀어 택지개발을 하려다 서울시 반대에 부딪혀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뿐, 이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의지가 약했던 것은 아니다.이런 점에서 그린벨트는 환경론자들을 제외하고는 이념에 따라 시각이 갈리는 그런 용도의 땅은 아니다. 적지 않은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일리 있다. 그린벨트 보전의 목적이 무질서한 도시 학산을 막는다는 명분이지만, 위성도시가 발달하고 도시가 이미 팽창한 상황에서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천이나 부산의 경우 도시가 인접 농촌 지역으로 도시가 팽창하면서 도시 안에 그린벨트가 존재하는 곳도 있다. 또 그린벨트가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비닐벨트가 돼 버려 '그린 없는 그린벨트'란 지적도 있다. 그래서 도시계획 전문가들 중에는 벨트 방식이 아닌 존(zone) 방식으로 규제를 바꿔 토지 특성에 따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린벨트가 무슨 불가침의 절대적 성역도 아닌데 효율적인 개선 방안은 생각해볼 때가 됐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