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같은 작품 함께 공연한 경험 살려
지난 18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극 ‘오네긴’(사진)은 줄거리만 보면 ‘막장 드라마’다. 현대 정서로는 감정 이입이 어려운 서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은 연기와 무용이었다.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마음을 흔들려고 집으로 찾아갔다가 퇴짜를 맞는 3막 2장 ‘회한의 파드되(2인무)’는 이 공연의 백미다. 발레리노 이동탁과 발레리나 강미선은 열정적인 몸짓에다 두 손과 발끝으로 두 주인공의 감정을 객석에 온전하게 전달한다.
‘오네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에서 무대에 오른 첫 번째 전막 발레다. 이 작품이 코로나19를 뚫고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도 극 내용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 이 작품을 안무한 ‘드라마 발레의 전설’ 존 크랑코(1927~1973)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연출가였다. 무용수들의 연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춤을 추지 않고 무대를 채우는 조연들도 쉼 없이 연기를 하도록 지시했다. 원작자의 공연권을 보유한 존 크랑코 재단도 라이선스 관리가 엄격하고 캐스팅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공연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공연권을 얻은 발레단이 공연을 올릴 때마다 제작진을 파견한다. 연출가 제인 번, 무대·의상 디자이너 토마스 미카, 조명 디자이너 스틴 비야르케 등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이 2017년 ‘오네긴’을 올릴 때에도 이들이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함께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대신 비대면 방식을 택했다. 3년 전 이들 제작진이 만든 의상과 무대세트, 조명이 남아 있고, 제인 번이 대면으로 발레단원들을 일일이 지도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니버설발레단과 크랑코 재단은 공연 두 달 전부터 동영상을 쉼없이 주고받았다. 연습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보내면 제작진이 수정·개선 사항을 영상으로 찍어 전달했다.
오네긴-타티아나 역도 이전에 무대 경험이 있는 무용수로만 캐스팅했다. 이동탁-강미선 듀오는 제인 번과 여러 번 무대를 함께했다. 이현준-손유희 듀오는 2017년 미국 털사발레단에서 제인 번이 연출한 오네긴 무대에 섰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