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기업들이 차세대 비만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비만치료제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노보 노디스크의 '삭센다'를 대체할 수 있는 국산 신약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비만 시장 매년 32.8% 증가

비만치료제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1996년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하면서다. WHO에 따르면 1975년 이후 전 세계 비만인구는 2010년대 중반까지 3배 이상 증가했다. 비만이 질병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처방 가능한 제품이 늘면서 비만치료제 시장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은 2016년 11억달러에서 연평균 32.8%씩 성장해 2027년 241억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2015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삭센다는 비만치료제의 신기원을 연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부작용이 심한 향정신성의약품 일색이었던 비만치료제 분야에서 식욕을 억제하는 새로운 기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뇌의 시상하부에 작용해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GLP-1과 97% 유사한 삭센다는 공복감을 줄여 음식을 덜 먹게 하는 효과가 있다. 출시된 지 5년 만인 지난해 삭센다는 1조원 넘게 팔렸다. 북미, 유럽 등에서는 7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삭센다의 등장으로 비만치료제 시장의 잠재력이 현실화했다"며 "차세대 비만치료제는 삭센다를 경쟁 상대로 여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전성과 사용 편의성 고려

차세대 비만치료제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안전성이다. 삭센다는 기존 비만치료제보다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부분의 비만치료제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인위적으로 세로토닌,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게 만드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중독성이 강하고 불안, 우울 등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허가를 받았다가 부작용으로 시장에서 퇴출된 비만치료제만 리덕틸, 리덕스 등 5개다. 지난 2월 에자이의 비만치료제 '벨빅'이 암 발생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판매가 중단된 게 가장 최근 사례다.

노브메타파마셀리버리는 '렙틴'이란 호르몬에 주목하고 있다. 랩틴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포만감을 느끼게 해 식욕을 조절한다. 비만 환자는 랩틴이 제 기능을 못한다. 그 결과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먹게 된다. 두 회사의 후보물질은 랩틴의 기능을 정상화한다. 노브메타파마는 미국에서 진행한 임상 2상에서 12주 만에 환자 체중이 최대 3%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삭센다는 52주간 진행한 임상 3상에서 체중이 5~10%가 감소했다.

이헌종 노브메타파마 부사장은 "신경전달물질을 인위적으로 분비하게 하는 향정신성의약품과 달리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랩틴을 정상화하는 약물이기 때문에 안전하면서도 효과가 좋다"고 했다.

삭센다보다 투약이 편리한 제형 개발에도 관심이 높다. 삭센다는 환자가 매일 일정량을 직접 주사해야 한다. 미국에서 임상 1상이 진행 중인 한미약품의 비만치료제 '글루카곤 아날로그'는 약물의 반감기를 늘려주는 원천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됐다. 일주일에 1회 투여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 중이다. 셀리버리와 노브메타파마는 경구제를 개발 중이다. 노보 노디스크도 삭센다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삭센다와 유사한 GLP-1 유사체인 세마글루타이드 임상 3상을 하고 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일주일에 1회 주사하면 된다.

당뇨 치료 효능은 덤

비만에 동반되는 당뇨에 대한 효능은 삭센다와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삭센다는 당뇨 치료 효과가 없다. 많은 비만 환자가 인슐린 저항성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인슐린 저항성이 크면 혈당을 분해하는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져 혈당 수치가 높아진다.

노브메타파마와 셀리버리는 비만과 함께 인슐린 저항성에도 효과가 있는 후보물질을 가지고 있다. 셀리버리는 동물실험에서 쥐의 혈당이 67%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셀리버리 관계자는 "비만 환자는 장기적으로 인슐린 저항성이 생긴다"며 "정기적으로 복용하면 당뇨까지 예방하고 개선할 수 있는 비만치료제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