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투기자본에 판 깔아줄 상법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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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위원 분리선출·의결권 제한
세계에서 유례없는 '한국식' 규제
자회사 지분 많은 지주社 '비상'"
이건호 편집국 부국장
세계에서 유례없는 '한국식' 규제
자회사 지분 많은 지주社 '비상'"
이건호 편집국 부국장
![[이건호 칼럼] 투기자본에 판 깔아줄 상법개정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7/07.26110264.1.jpg)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모비스에 해외 경쟁사 임원을 감사·이사로 앉히라고 했다. 현대차 사외이사 후보(선임 시 감사위원 후보)로 로버트 랜달 매큐언 밸러드파워시스템 회장을 추천했다. 밸러드파워시스템은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현대차의 경쟁사다. 모비스 사외이사로는 로버트 앨런 크루즈 중국 카르마 오토모티브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을 제안했다.
엘리엇은 2015년에도 삼성물산 지분 7.12%를 사들인 뒤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반대했으며 그 후유증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전에도 SK(소버린자산운용)와 KT&G(칼 아이칸)가 헤지펀드의 공세에 시달렸다.
‘엘리엇의 악몽’이 아직 생생한데, 정부가 투기자본에 판을 깔아줄 수 있는 내용의 상법개정안을 다시 밀어붙이면서 기업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개정안 주요 내용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강화 등이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제도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다. 투기자본이나 적대 세력이 이사회에 진입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총에서 이사를 뽑은 뒤 선임된 이사 중 감사위원을 선출한다. 감사위원을 뽑을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을 적용한다. 개정안은 감사위원이 될 이사(1인 이상)를 처음부터 별도도 분리선출(3%룰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다.
감사위원은 감사와 이사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분리선출 제도를 통해 투기세력이나 헤지펀드가 1명이라도 감사위원을 배출하게 되면 이사회에서 사사건건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회사 기밀까지 빼갈 수 있다. 현행 상법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사외이사 3분의 2 이상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3인 이상)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고 있다.
보유지분에 따른 다수결로 경영진을 선출하는 원칙은 주식회사 체제의 근간이다. 4·15 총선에서 압승한 집권 여당은 다수결의 논리를 앞세워 18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친노동, 반(反)기업적 법안도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강행처리할 태세다. “거대여당의 전횡을 막기 위해 국회에서 제1당의 의결권을 제한하자”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