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공개…주둔마을 생활·선박호송 중 사고도 묘사
태안 고가(古家) 벽지서 조선 한시…수군 일상·인명희생 다뤄
충남 태안의 옛 수군 주둔지인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에 있는 고가(古家)에서 수군진촌(水軍鎭村, 수군이 주둔한 마을)의 역사와 서정을 느낄 수 있는 다수의 한시(漢詩)가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6월 진신도의 한 고가에서 조선 수군 명단이 적힌 군적부(軍籍簿)를 확인한 이후, 당시 함께 발견한 한시 3편과 최근 벽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찾은 다수 한시 중 일부를 공개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한시 중에는 안흥진 수군의 조운선 호송과정에서 발생한 인명의 희생을 다룬 시가 있다.

당나라 시인 왕유(699∼759)의 오언절구 한시 '조명간'(鳥鳴澗)에서 형식과 내용을 빌려 초서체로 쓴 시로 '사람이 계수나무꽃 떨어지듯 하여, 밤은 깊은데 춘산도 적막하다'(人間桂花落 夜靜春山空)라고 표현해 수많은 인명이 바다에 빠져 희생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태안 고가(古家) 벽지서 조선 한시…수군 일상·인명희생 다뤄
실제 조선 시대에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에는 '안흥량을 왕래하는 선박 중 뒤집혀 침몰하는 것이 10척 중 7∼8척에 이르고, 1년에 침몰하는 것이 적어도 20척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바람을 만나 사고가 많으면 40∼50척에 이른다'(1667년인 현종 8년 윤 4월조)라는 기록이 있어 이 지역에서 해난 사고가 빈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사고가 많은 해역 특성상 수군과 조운선을 관리하는 이 고가의 벽지에서는 '무량수각'(無量壽閣,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건물)이란 문구도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태안 고가(古家) 벽지서 조선 한시…수군 일상·인명희생 다뤄
이들 한시 중에는 '문신설개연사방현사다귀지'(聞新設開宴四方賢士多歸之, 새로 짓고 잔치를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였다는 뜻)란 제목의 시가 있다.

1843년 7월 16일 신진도 안흥진 수군의 관가(官家)를 건축한 이듬해 첨사(僉使, 수군을 관리하고 통솔하던 종3품의 벼슬) 조진달이 손님을 맞아 잔치를 베풀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한시로는 '황맥타양출가가'(黃麥打麥+羊出家家, 집마다 찰보리를 타작해 거두어 간다는 뜻)가 있다.

시에는 '군포를 내라는 조칙이 있는데도, 갑자기 지난밤 보리를 보내어 왔구나'(布詔行令曾如此 忽然昨夜麥秋至)란 구절이 있어, 이 가옥이 군포(軍布)나 곡식을 관리하는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고가의 벽지 해체 과정에서 한시로 추정되는 것들이 다수 발견됐지만 조각조각 나뉘어 있어 아직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시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만 공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태안 고가(古家) 벽지서 조선 한시…수군 일상·인명희생 다뤄
고가의 상량문(上樑文)에는 '도광(道光, 청나라 도광제(재위 1820∼1850)의 연호) 23년'이라는 명문이 적혀 있어 건축연대가 1843년으로 추정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이곳 벽지에서 조선 후기 군역의 의무가 있는 장정(壯丁) 명단과 특징을 기록한 공적 문서인 수군 군적부를 발견한 바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유물 발견을 계기로 민간에 전승되던 안흥진 수군과 관련한 개인문집과 문학작품을 찾아 번역할 계획이다.

관련된 주요 문집으로는 김득신(1604∼1684)의 '백곡집'(栢谷集), 김규오(1729∼1791)의 '최와집'(最窩集), 이상적(1804∼1865)의 '은송당집'(恩誦堂集) 등이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오는 24일 오후 1시에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최하는 '제2회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 학술대회에서 해당 유물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