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다이슨 신제품은 한국 가정구조에 최적화된 신기능도 눈에 띕니다만, 국내 가전업체가 올해 초 신제품을 출시한 상황에서 다이슨이 그간 고수해왔던 고가 전략에서 벗어나 가격을 확 내린 제품을 출시했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다이슨은 23일 서울 성동구 S팩토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360도 헤드가 돌아가는 무선청소기 '옴니-글라이드'와 무게가 1.9kg로 가벼운 '디지털 슬림'을 선보였습니다. 토마스 센터노 다이슨 한국지사장이 현장에 참석했고, 다이슨 창립자인 제임스 다이슨 최고 엔지니어도 영상으로 제품을 설명했습니다. 옴니-글라이드는 맨발로 생활하고 집에 가구가 많은 한국 가정집에 어울리는 제품이라고 다이슨은 설명했습니다. 360도로 헤드가 돌아가는 '전 방향 플러피 클리너 헤드'가 처음으로 장착됐는데, 장애물이 많고 좁은 주거공간에도 모든 방향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청소할 수 있습니다.
손잡이부터 헤드까지 전체 바디는 나무막대로 된 빗자루처럼 일직선 구조를 취하고 있어 소파 아래나 가구 틈도 손쉽게 청소가 가능합니다. 헤드에는 역회전하는 플러피 롤러 2개가 장착돼 전·후방으로 움직일 때마다 대형 잔해물부터 미세먼지까지 흡입해준다는 설명입니다. 강한 흡입력도 장점입니다. '레디얼 루트 파이클론 기술'을 새롭게 적용해 여덟 개의 루트 싸이클론이 강력한 원심력을 생성시켜 미세먼지를 공기 흐름 과정에서 분리해 흡입해줍니다. 먼지통, 필터, 헤드 등 전자 부품이 없는 모든 부속은 물 세척이 가능하며, 먼지통 분리도 간편합니다.
실제로 옴니-글라이드를 써보면 기존 무선청소기와 달리 손목이 방문 손잡이를 돌리는 모양새가 되는데 손목에 무리가 덜 간다는 느낌을 줍니다. 헤드 부분은 설명대로 360도로 회전이 가능해 의자 밑이나 둥근 가구 곁, 가구 틈새 곳곳을 청소하기 쉬웠습니다. 가구가 많은 집이라면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선보인 다이슨 디지털 슬림은 슬림한 크기와 1.9kg 가벼운 무게가 장점입니다. 지난해 출시한 'V11' 무선청소기에 비해 크기는 20% 작아졌으며 무게는 30% 가벼워 졌다는 게 다이슨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다이슨은 이날 간담회에서 해당 제품이 가볍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알리기 위해 풍선에 매달아 놓기도 했습니다.
크기는 슬림해졌지만 그렇다고 청소 성능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2kg 미만의 기기 안에 모든 핵심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고단한' 시도를 했다는 게 다이슨 연구원의 전언입니다.
적용된 핵심 기술을 꼽자면 우선 최대 12만 분당 회전수(RPM)로 회전해 초미세먼지까지 청소해주는 '하이퍼디미엄 모터'입니다. '싸이클론 팩'도 재설계돼 단 11개 싸이클론만으로 흡입력을 발휘합니다. 클리너 헤드도 40% 더 작고 가볍고 항공기 등급의 알루미늄을 적용해 효율성과 강도를 유지했습니다. 먼지를 강력하게 흡입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액정표시장치(LCD) 스크린기술과 5단계 필터레이션 시스템도 적용됐습니다. 5단계 필터레이션 시스템은 99.97%의 미세먼지를 잡아냅니다. 실제로 써보면 여타 제품들에 비해 확연히 가볍다는 느낌이 듭니다. 여성들이나 청소년들도 한 손으로도 가볍게 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가격입니다. 옴니 글라이드의 가격은 54만9000원부터 69만9000원이고 디지털 슬림은 79만9000원부터 89만9000원입니다. 그간 100만원이 훌쩍넘는 제품들만 출시해왔던 다이슨의 이례적인 행보입니다.
경쟁사인 국내 가전업체들의 제품들과 비교해도 경쟁력을 갖습니다. 지난 3월 출시된 LG전자 무선청소기 'LG 코드제로 A9S 씽큐'는 90만원~139만원이고 비슷한 시기에 삼성전자가 출시한 '삼성 제트' 신제품은 104만9000원~124만9000원입니다. 별도 구매해야 하는 먼지 배출 시스템 삼성 '청정스테이션'은 19만9000원~24만9000입니다.
가격을 낮추고 국내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 지를 찾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제품이지만 이번 행사 설명에서 그간 지적 받았던 배터리 전체 수명을 확대시켰는 지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이슨은 여럿 소비자들로부터 사후서비스(AS)를 국내 제조사만큼은 받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국내 무선청소기 시장은 2017년까지만 해도 다이슨의 독무대였습니다. 전기 코드를 꽂아야 했던 국내 유선청소기 시장에서 출시된 다이슨의 무선청소기는 '혁신적이다'라는 평이 잇따랐습니다. 다만 2018년 말 LG전자가 걸레로 닦아야 하는 바닥 문화 중심인 한국 사회에 맞춘 물걸레 키트가 달린 무선 청소기를 내놓으면서 시장은 달라졌습니다.
국내의 무선청소기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무선청소기 시장 규모는 180만대로, 전년 대비 30% 상승이 예상됩니다. 제조업체들은 자사의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순위를 매길 수는 없습니다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지난달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무선청소기 시장은 다이슨과 LG전자로 양분돼 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어떤 제조사의 제품을 사고 싶냐'는 질문에 1000명의 성인 응답자(1, 2, 3순위 답변 합산 기준) 중 62%가 LG전자 코드제로를 1순위로 꼽았습니다. 다이슨을 첫번째로 꼽은 사람은 60% 정도였습니다. 공사는 조사에서 오차 범위 수준의 차이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두 제품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소비자들은 구매 포인트로 두 제조사의 뛰어난 제품 성능을 꼽았습니다. 또한 가격, 이용 편리성, 내구성 등이 구매에 영향을 줬다고 공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LG전자와 다이슨의 경쟁이 치열하고 삼성전자도 쫓아오는 가운데, 다이슨의 이번 신제품 출시가 향후 국내 무선 청소기 시장의 판도를 다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지 관심이 갑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