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7월 20일은 국내에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꼭 6개월째 되는 날입니다. 6개월 간 전염병과 사투를 벌인 한국 사회는 유례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늘상 마주했던 일상 속 풍경 상당수가 소리없이 사라지고 해체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Before Corona, BC)과 이후(After Corona, AC) 6개월 너무나 빨리 변해버린 일상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출입문 통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출입문 통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21일 오후 골목마다 소극장이 숨어있는 서울 혜화동 대학로 거리는 유독 썰렁했다.

평일 오후 5시·8시께 상영을 앞둔 소극장 앞. 예년이면 떠들석한 여름밤 대학로 분위기로, 소극장 공연표를 사려는 연극팬들로 북적이던 길목이지만 코로나 사태 6개월만에 자취를 감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관객의 발길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대학생 임지연(가명)씨는 "코믹극을 관람했는데 관객 수가 한자릿 수에 그쳐 마음이 아팠다"며 "코로나19 이후 관객이 부쩍 줄어 인기 뮤지컬 '김종욱 찾기' 등도 스무명이 채 안되는 관객이 본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사람의 발길이 줄면서 대학로 상권도 빈사 상태에 빠졌다. 목 좋은 골목 곳곳 가게 유리창에 '임대' 공고가 붙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속 안그래도 형편이 어렵던 공연계는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안그래도 좁은 소극장, 따닥따닥 붙어앉아야하는 좁은 좌석들. 대학로 소극장 무대엔 코로나의 그림자가 6개월째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상반기 공연계 '보릿고개'…매출 970억 그쳐

21일 오후 서울 혜화동 대학로 좋은공연안내센터에 방문객이 없어 한산한 분위기다. 사진=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21일 오후 서울 혜화동 대학로 좋은공연안내센터에 방문객이 없어 한산한 분위기다. 사진=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올 상반기 공연계 매출은 969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하반기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24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 상반기 공연계 전체 매출은 969억원으로 지난해 하반기 매출(1916억원)에 비해 49.4% 감소했다. 그나마 코로나19가 국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1~2월 실적이 상반기 전체 매출의 3분의 2(64.8%)를 차지했다.

문화예술 행사가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해도 코로나19 여파는 뚜렷했다. 공연 취소 혹은 축소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전체 공연 건수는 지난해 하반기 8387건에서 2471건으로 70.54% 축소됐다. 지난해 상반기 매출이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의 본격적인 집계가 이뤄지기 전인 만큼 상반기와는 비교가 어려웠지만 상반기보다도 급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윤우 한국소극장협회 사무국장은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직후 어린이·청소년 공연부터 줄줄이 취소돼 취소율이 30% 수준으로 뛰었다"며 "이후 점차 심각해져 5월까지는 소극장 공연 취소율이 70%가 넘었다"고 토로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매출은 969억원으로 지난해 하반기 매출 1916억원에 비해 49.4% 감소했다. 자료=공연예술통합전산망 제공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매출은 969억원으로 지난해 하반기 매출 1916억원에 비해 49.4% 감소했다. 자료=공연예술통합전산망 제공
실제 주요 온라인 예매처 중 한 곳인 인터파크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해당 사이트의 뮤지컬 부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 급감했다. 월별로 2월부터 매출이 급감해 4월을 바닥으로 다소 완화되는 추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동현 인터파크 공연컨설팅팀장은 "5월부터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매출이 회복됐고, 이후 전월 대비 증가세를 나타내며 미약하게 증가하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관객들이 심리적으로 얼어붙은 상태"라고 분석했다.

6개월 피해 1500억 추산…하반기 더 어렵다

사진=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사진=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대학로 공연업계를 비롯한 문화예술 분야의 매출 피해는 상반기에만 1500억원 가까이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코로나19가 문화예술 분야에 미친 영향과 향후 과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코로나19로 공연예술 분야에서 823억원, 시각예술 분야에서 666억원 등 총 1489억원의 매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2017~2018년 문예연감 예술활동현황 자료와 2019~2020년 문화예술 분야 신용카드 지출액 자료를 활용해 상반기 취소된 공연과 전시 건수를 각각 6457건과 1525건으로 추정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과 미술시장실태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공연과 전시의 건당 평균 매출을 각각 2030만원, 1370만원으로 산정해 취소건수를 곱해 전체 피해액을 추산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피해도 막대하다. 공영예술분야 305억원, 시각예술분야 34억원으로 약 339억원의 고용피해(인건비 감소)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연업계에서는 5~6월로 접어들면서 감소폭이 둔화됐지만 여전히 예년수준의 만회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라고 토로한다. 문제는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잦아들고 있지 않아 문화예술 행사 성수기로 접어드는 하반기에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닫혀 있던 공연장들이 좌석 간 거리두기 등 방역 조치를 지키며 열리고 있지만 분위기가 예년같지 않다. 소극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반복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이 들어차는 팬덤을 갖춘 뮤지컬마저도 거리두기 조치로 매출 타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동현 팀장은 "올해 연말 성수기가 예년과 같은 분위기를 나타내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며 "최근 코로나19 재확산과 함께 가을 2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설이 돌고 있는 만큼 관건은 추가 확산 여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오후 서울 혜화동 대학로 한 소극장 앞에 운영이 끝난 매표소가 비어 있는 모습. 사진=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21일 오후 서울 혜화동 대학로 한 소극장 앞에 운영이 끝난 매표소가 비어 있는 모습. 사진=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그래도 쇼는 계속돼야 한다"

정부가 다양한 지원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대부분은 창작 활동 지원금 중심으로 조성되다보니 상대적으로 영세한 예술단체들은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활동할 기회와 장을 제공하고 인건비·활동비를 우선적으로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통상 활동 지원금의 조건은 비대면 콘텐츠 등 통한 작품 활동이 선결 조건인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도 소규모 예술단체는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양 연구위원은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영상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제작 비용이 소요되는데 영세한 예술단체의 경우 이러한 제작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디지털 격차의 심화로 취약계층의 문화접근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술계에서는 정부의 지원사업을 바탕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가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방역수칙을 지키며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관객들의 발걸음을 다시 끌어오겠다는 방침이다.

김관 한국연극협회 사무총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공연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각 극단이 지침을 지키며 긴밀하게 예민하게 대처하고 있는 만큼 반대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는 영국의 록 밴드 퀸의 노래 제목 'Show must go on'을 인용하며 "그래도 쇼는 계속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