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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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공포’라며 디플레이션 걱정한 게 얼마나 됐나. 그런데 인플레이션 걱정할 판이다. 적어도 자산시장을 보면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다. 서울의 집값만이 아니다. 금도 그렇고, 원유가격도 뛴다고 한다. 트럼프 정부가 얼마나 돈을 풀었는지, “미국 달러 빼고 다 올랐다”는 평도 나온다. 그럼 ‘I의 공포’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보면 ‘R(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라고도 할 판이다. 마이너스 3.3%의 역성장, IMF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최악이다. D인가, I인가, R인가, 두려워해야 할 경계의 대상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코로나 쇼크’는 어떻게 되고 있나. 이 정도에서 정리가 되면서 산업과 금융, 경제가 조금씩 정상화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진단이 더 많은 것 같다. 항공·관광 쪽만이 아니다. 취약 산업, 부실기업, 한계사업자에 대한 금융권의 ‘조치’가 9월쯤으로 미뤄졌을 뿐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상황은 평온해 보이지만 모든 위기를 9월로 미뤄놨을 뿐”(한경 밀레니엄 포럼 행사 강연)이라고 한 적 있다. 코로나 위기를 이유로 대출도, 보증도, 회수와 종료를 미뤄둔 것이다. 그렇다면 위기는 진행 중이거나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수출이나 기업의 수익 실상에서부터 정부·기업·가계 할 것 없이 마구 늘어나는 부채·대출까지 그다지 개선돼가는 경제 지표는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무서운 유동성의 힘, 실물 산업경제와는 딴판 만들어내

하지만 고삐 풀린 유동성의 힘은 무섭다. “22번 대책 발표가 다 헛발질”이라는 비판과 조롱이 정부에겐 아프게 들리겠지만, 사실 과도한 유동성이 집값을 끌어올린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서울 일부 지역을 비롯한 집값과 전셋값 상승을 보면 인플레이션이 달리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금도 말 그대로 금값이 됐다. 특히 최근 들어 급등했다. 금은 당연히 국내외 시세가 함께 가파르게 우상향하고 있다. 물론 내일은 모른다. 또 어떤 블랙 스완이 나타날지, 또 어떤 비관론이 그럴듯하게 나놔 시장을 뒤흔들지는…. 어떻든 최근 국제유가도 상승세다. 오르는 품목에 은 같은 것도 있다. 미국과 한국 등 국내외 주가상승을 보면 ‘언제 위기였나’ 싶을 정도다. 원인 혹은 배경이라고 따져본다면, 코로나 대응으로 미국부터 엄청나게 돈을 풀었고, 풀린 돈은 바로 안전자산을 찾아 이동하고 있는데다,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각국의 경기부양 노력까지 반영된 것이다. 이런 게 자산시장의 버블 혹은 ‘I의 경계심’을 발동시킨다.

개인들은 ‘아차!’ 싶기도 할 것이고, ‘지금이라도?’ 싶기도 할 것이다. 3040세대를 중심으로 한 주택시장의 이른바 ‘패닉 바잉’이 그렇게 형성됐을 것이다. 하지만 판단은 어렵기만 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의 통화가 3054조원(5월 기준)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됐다. 한 달에 35조원씩(5월) 늘고 있다. 이 돈이 자금사정이 어려운 산업 현장으로는 가고 있나. 그렇지 않으니 공모주 청약이 나왔다하면 수 조원씩 몰리며 수 백 대 일 이상의 과열 경쟁이 빚어진다. 정부의 헛발질 정책과 기가 막힌 조합을 이루며 집값이 밀어 올린다. 은행 정기예금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매월 10조원에 달한다. 만기가 된 정기예금이 도저히 은행에 계속 남아있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돈이 수익을 찾아 자산시장으로 간다. 인플레이션이 달리 인플레이션인가. 돈은 넘치는 데 정부는 건실한(?) 투자처를 유도해내지 못하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부동산정책이라고 내놓는 것 마다 ‘똘똘한 한 채’를 넘어 ‘진짜 똘똘한 한 채(진똘)’ 현상을 부추겨왔다.

‘D의 공포’‘R의 공포’에서 ‘I의 공포’, ‘S의 공포’까지

돌아보면 ‘D의 공포’라는 말이 신문지면에 오르내린 게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연말까지 많이 나왔지만, 실은 지난달에도 여러 군데서 여러 차례 나왔다. 지난달 디플레이션 경계론은 6월2일 발표된 통계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가 큰 요인이었다. 5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8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보인 것이다. 서비스물가 상승률도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12월 이후 최저치를 보이면서 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0.3%로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제유가가 바닥모른 채 하락세였고, 코로나위기로 외부활동, 대면접촉이 급감하면서 물가가 오를 이유도 없었다. 물가통계만 보면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물론 소비자물가 동향이 바로 급반전한 것도 아니다. 아직 인플레이션이라는 판단이나 적극적 주장도 없다. 하지만 분위기의 반전감은 분명히 있다. 자산시장의 현상이라고 하지만 ‘(단기) 급등’‘버블(우려)’ 같은 말이 나오는 것이 그렇다.

풀린 돈의 힘은 역시 무섭다. 투자자들과 소비자들의 행태도 금리와 유동성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사상 유례가 없는 초저금리는 ‘저축’의 개념을 흔들어버렸고, 빚내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게 한다. 갚은 능력이 없는 경우는 물론, 굳이 당장 쓸 데가 없어도 돈을 빌리자는 분위기도 있다. 정책기조가 확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돈이 다 어디로 갈까.

D의 공포도 무섭지만, 인플레이션도 무서운 것이다. 중간쯤이 좋겠지만 중용의 길은 언제나 쉽지 않다. <'GDP물가' 하락, 경제 활력 상실 뚜렷한 징표다>는 한경 사설이 나간 게 지난해 12월4일자다. 코로나 위기가 없을 때였다.

물가 통계를 인용하면서 비슷한 기사가 경제 매체에 다시 실린 게 지난달 초반이다. 그런데 버블에 신경 쓰게 되는 국면이 됐다. 자산시장의 현상이라는 하겠지만….

가뜩이나 너무 올라 곳곳에서 문제제기 해 왔는데도, 역성장에도 더 오른 최저임금, 깊어지는 주요 산업의 침체, 중소기업과 자영사업자의 여전한 위기, 이런 악조건에서도 신(新)버블 상황이라면 스테그플레이션 걱정을 해야 하나. 그래서 ‘S의 공포’인가. D든 I든 R이든 혹은 S든 겁난다. 그런데도 정부, 특히 슈퍼여당의 정책방향은 안일해 보인다. 근거 없는 낙관론, 근거 없는 자신감이야말로 위험하다. 증시의 개미도, 부동산 시장으로 내몰리는 개인들도, 모두에게 참으로 어려운 시기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