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주재한 중국 총영사관 폐쇄 명령의 보복 조치로 쓰촨성 청두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을 폐쇄할 것을 24일 요구했다. 미·중 갈등이 폭발하자 이날 상하이종합지수(-3.8%), 선전지수(-5.0%) 등 중국 증시가 급락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주중 미국대사관에 “중국은 청두에 주재한 미국 총영사관의 설립과 운영 허가를 철회한다”며 “청두 총영사관의 모든 업무와 활동을 중지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어 “미국은 지난 21일 일방적으로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통지하며 국제법과 국제관계 기본 준칙, 중·미 영사조약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이번 조치는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1985년 문을 연 청두 미국 총영사관은 광저우, 상하이, 선양, 우한과 함께 미국이 인권 상황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티베트자치구를 관할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요바린다의 닉슨도서관 연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파산한 전체주의 이념의 진정한 신봉자”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 동맹국과 중국 국민이 중국 공산당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미국과 함께 일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 총영사관 폐쇄 조치에 대해선 “휴스턴 총영사관이 스파이 활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라며 중국에 책임을 돌렸다.

폼페이오 "習의 독재" 맹공…'외교 결별' 각오했나

미국과 중국이 영사관 폐쇄 문제로 정면충돌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직접적인 맞대응을 피해왔지만 이번엔 ‘강(强) 대 강’으로 보복에 나섰다. 영사관 폐쇄는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처음이다. 양국이 사실상 ‘외교적 결별’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청두는 티베트 정보 수집 요충지

중국 외교부는 24일 쓰촨성 청두 주재 미국 영사관의 설립과 운영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의 텍사스주 휴스턴 주재 중국 영사관 폐쇄 명령에 대해 ‘눈에는 눈’ 식으로 보복한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조치는 미국의 비이성적 행위에 대한 정당하고 필요한 대응”이라며 “모든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미국에 책임을 돌렸다.

청두 영사관은 미국이 중국 본토에서 운영하는 5개 영사관 중 한 곳이다.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 등을 관할하는 곳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청두 미 영사관은 미국이 신장과 티베트 정보를 수집하는 요충지로, 중국에선 눈엣가시처럼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청두 미 영사관은 2012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부하 왕리쥔 전 국장이 망명을 요청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미·중은 왕리쥔의 신병인도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결국 그의 망명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국이 본토에 있는 5개 미 영사관 중 청두를 폐쇄하기로 한 건 ‘미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리하이둥 중국 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소 교수는 관영 환구시보에 “청두 영사관은 업무량과 관할 지역 규모가 비교적 작은 공관”이라며 “중국은 이를 통해 아직 (미국과) 이견을 조율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보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호주의’를 표방하는 외교 관계상 미국의 조치에 맞서 중국도 미국 영사관을 폐쇄할 수밖에 없지만 가장 영향력이 작은 곳을 골랐을 것이란 분석이다.

“시진핑, 파산한 전체주의 이념 신봉자”

중국은 일단 휴스턴 영사관 폐쇄도 거부하고 있다. 미 정부가 통보한 폐쇄 시간은 현지시간 24일 오후 4시다. 중국은 미국 정부가 폐쇄 이유로 제기한 ‘스파이 행위’에 대해 “우리는 그런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중국이 끝내 휴스턴 영사관 폐쇄를 거부하면 양국 관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전문가들도 쉽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2017년 샌프란시스코 주재 러시아 영사관 폐쇄를 통보했을 때 러시아는 순순히 물러났다.

중국도 대외적으론 휴스턴 영사관 폐쇄를 거부하고 있지만, 영사관 밖에 화물 차량을 대기시켜 놓는 등 이미 이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미 ABC 방송은 전했다.

미국이 추가 조치를 내놓을지도 관심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추가 공관 폐쇄는 언제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 법무부는 미연방수사국(FBI)이 비자 사기 혐의로 기소한 중국 연구원 네 명 중 한 명이 미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 영사관으로 도주했다고 23일(현지시간) 밝혔다. 이에 따라 샌프란시스코 중국 영사관이 다음 타깃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을 100여 일 앞둔 상황에서 불리한 판세를 뒤집기 위해 ‘중국 때리기’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측근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3일 한 연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파산한 전체주의 이념의 진정한 신봉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면서 “자유세계는 이 새로운 독재에 맞서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특히 “중국 공산당은 어떤 외국의 적보다 중국 국민들의 정직한 의견을 무서워한다”며 중국 국민에게 체제 변혁을 촉구했다. 외교수장이 중국의 리더와 집권 세력을 직설적으로 비난하고 그 나라 국민에게 ‘반체제’를 요구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대립할 당시와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은 이날 “미국은 중국의 발전 과정을 철저히 끊으려 한다”며 “이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도를 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중국은 미국의 장단에 맞춰 춤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강동균/워싱턴=주용석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