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가 툭 던지듯 고백했다. “나는 어릴 때 위인전 50권 전집 뒤에 숨어 살았어.” 친구의 기억 속 80년대는 어른들이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리던 시절이었다. 경제 성장의 열기 속에서 어른들의 목소리는 늘 높았고, 아이들의 섬세한 결을 돌볼 여유는 없었다. 그 거친 시대의 파도 속에서 생각은 있지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은신처를 찾아야 했다. 친구에게 그것은 거실 한구석을 차지한 하얀 책등의 위인전 전집이었다.당시 전집 방문 판매가 인기였는데, 서울 아이들이 계몽사 명작 동화를 읽을 때, 지방에 살던 그녀는 엄마가 공부에 도움 되겠지, 기대하며 넣어준 위인전을 탐독했다. 그때는 자신이 왜 그 책들에 그렇게 매달리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저 책장을 넘기는 동안만큼은 어른들의 야단도, 예측 불가능한 긴장감도 닿지 않는 ‘나만의 영토’를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하얀 표지들은 아이가 세상을 향해 세운 최초의 방화벽이었다.잠재적 공간의 힘이 지점에서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거장인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을 호출하게 된다. 그는 아이가 독립된 자아로 성장하기 위해 현실과 환상 사이의 완충 지대가 필요하다고 설파한 인물이다.위니컷은 『놀이와 현실』에서, 아기의 무력함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능력 사이에 ‘중간 영역’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유아에게 허용된 환상은 성인의 삶에서도 예술과 종교 안에 자리 잡으며, 환상 경험의 유사성은 사람들이 관심을 공유하고 집단을 이루게 하는 자연스러운 뿌리가 된다고 말한다.80년대의 조숙했던 아이들에게 위인전은 바로 완전히 현실도 아니고 그렇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27년째 악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김. 이달 6일부터 7일까지,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의 솔리스트로 무대에 오른다. [▶공연 정보] 1986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을 통해 연주자의 길에 들어선 지 어느덧 40년. 이번 공연은 마치 한 연주자의 시간이 돌고 돌아 다시 같은 지점에 맞닿는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그의 삶은 시작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의 모친 조봉희 여사는 클래식 음악이 생소했던 시절, 1956년 서울예고 1회 졸업생으로 서울대를 거쳐 미국 이스트만 음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클래식 음악계의 선구자였다. 음악을 사랑했던 그녀는 자식을 세계적인 솔리스트 연주자로 키우기로 결심하였고, 그렇게 그는 기억하는 인생의 모든 순간을 바이올린과 함께하게 되었다.세 살 아가의 손에 주어진 바이올린은 이후 그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하루도 빠짐없는 연습, 반복되는 시간들. 한 시간의 연습이 다섯 시간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동으로 이름을 알리며 방송에 출연했고, 여덟 살에는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에 입학해 도로시 딜레이1)의 제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력이 화려해질수록 또래 친구들의 평범한 토요일은 이제 그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향하는 고단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콘서트, 콩쿠르 그리고 연습 그리고 또 연습. 그 시절 그에게 음악과 바이올린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언어였지만, 동시에 그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벽이기도 했다.그가 열네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위암
자유에 대한 힘찬 갈망을 담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갑자기 오페라 아리아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앤디는 교도소로 들어온 위문품 중에서 낡은 LP 한 장을 찾아낸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방송실 문을 잠그고 LP를 턴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 순간 천상의 목소리처럼 우아한 노랫소리가 교도소 안에 울려 퍼진다. 동굴처럼 컴컴하던 교도소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반전된다. 음악 속에서 앤디의 동료 레드의 감동적인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난 그 이탈리아 여자들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알고 싶지 않았다.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진실도 있다. 다만 그 노랫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가슴이 아파오기까지 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높고 먼 곳으로부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우리가 갇힌 삭막한 새장의 담벼락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에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영화 '쇼생크 탈출' 중 모차르트의 오페라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장면] 음악이 마치 마법처럼 주위의 공기와 색채를 바꾸는 그 순간, 교도소에 울려 퍼진 노래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2중창 ‘산들바람은 부드럽게’이다. 간혹 ‘편지 2중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람둥이인 알마비바 백작은 하인 피가로의 연인인 하녀 수잔나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 수잔나는 백작부인과 공모해서 백작에게 편지를 보낸다. 저녁에 정원 구석에서 몰래 만나자는 내용이다. 그때 백작부인이 수잔나로 변장하고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이중창은 백작부인이 편지의 내용을 한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