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2008년 건축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서울시, 부산시, 인천시 등 17개 지방자치단체가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했다. 10년 전만 해도 ‘공공성’ ‘공공건축’이라는 말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어느덧 건축계의 중심어가 됐다. 이 덕분에 전국 578명의 공공건축가가 크고 작은 공공건축에 관여하고 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는 2011년 77명으로 시작했으나 현재 265명이나 된다. 3회 연임이 가능하다지만 서울시 공공건축가는 연인원 1500명에 이른다.

나는 건축기본법 제정을 주창하고 이를 연구하면서 ‘공공건축가’라는 용어를 법에 넣고자 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건축계 내부의 반대로 ‘민간전문가’라는 불투명한 용어가 채택됐다. 그러나 서울시는 2010년 ‘서울형 공공건축가 제도화 방안’을 위한 공청회 개최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공공건축가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이때 시작한 공공건축가 조직 방식은 이후의 다른 지자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서울시가 ‘서울형 공공건축가’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이 제도를 시작한 것은 ‘공공건축가 풀’을 조성해 이들을 시범사업에 참여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바란 것은 당면한 과제에 대한 해결형 공공건축가였다. 나는 이런 서울형 공공건축가가 자칫 공공건축 시장에서 활동을 허락받은 자, 공공건축가 제도는 건축설계의 공공 일자리 만들기 사업 정도로 잘못 인식될 우려가 크다고 봐 이에 크게 반대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울형’이라는 말을 덧붙인 공공건축가 제도를 시행했고, 이로써 이것이 지금의 전국 공공건축가 제도의 기반이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공건축가로 일하고 있으면 나름대로 크고 작은 문제점을 느꼈을 터인데, 문제를 지적하고 건전한 대안을 제시하는 공공건축가를 본 적이 없다. 공공건축가들은 자신이 행한 업무가 과연 ‘공공’의 본질에 닿아 있는지, 공공건축가라는 명칭에 맞게 정당한 행정 지원을 받았는지, 공공이라는 명분에 과도한 요구를 저렴한 설계비로 수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특정한 부류의 공공건축가에게 일이 집중되지는 않는지, 공정하게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한 공적인 의견이 거의 없다. 또 공공건축가가 각종 심사, 자문, 설계를 수행하면서 각 업무에 관한 권한과 책임이 명확했는지, 단기간에 기획하고 발주했거나 실시설계까지 마친 공공건축물을 자문해 주며 잘못된 행정을 뒷바라지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견해와 비판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현실을 보니 건축이 어떻게 공공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활발한 논의는 거의 보이지 않고, 공공건축을 건축사를 위한 시장 확대로만 여기는 듯하다. 확대되는 공공건축물 시장에 응모자가 과도한 지출을 하지 않게 제안서를 간소하게 제출하게 하자든지, 공정한 심사를 어떻게 담보하는가에 이들의 주요 관심이 쏠려 있다. 심지어는 공공건축은 건축사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니 심사위원도 건축사로만 한정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공공건축가들이 모여서 이러이러한 정책을 펴 달라고 자신이 속한 지자체에 제안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 서울, 부산, 광주 등 22개 지자체에서는 시장과 도지사가 총괄건축가를 직접 지명해 위촉하고 있다. 공공건축가는 총괄건축가를 임명하고 난 다음 모집한다. 그렇지만 총괄건축가는 공공건축가를 지휘하는 사람이 아니다. 공공건축가들은 집단지성으로서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공공건축의 방향을 함께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총괄건축가는 지역의 공공건축가 중에서 선출하거나, 이들이 낸 후보 중 지자체장이 위촉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공공건축가들에게는 이와 같은 문제 제기가 없다.

공공건축가는 공공건축물 설계만 해주는 사람이 아니며, 행정을 대신해 일처리를 해 주는 봉사자도 아니다. 공공건축가는 ‘공공’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할 공공건축의 주체다. 그런데도 오늘의 저 수많은 공공건축가는 왜 오랫동안 이런 질문을 하지 않고 있으며, 공공건축에 대한 의미 있는 담론은 왜 만들고 있지 못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