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원희룡 제주지사 "부동산 실패, 문재인 정권 무덤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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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야성·콘텐츠 부족하다고? 내 색깔 분명하게 내겠다"
"야성·콘텐츠 부족하다고? 내 색깔 분명하게 내겠다"
원희룡 제주지사(사진)가 27일 “‘내 집’을 원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 집값은 결코 잡힐 수 없다”며 “부동산 정책 실패가 문재인 정권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지사는 이날 제주특별자치도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은 노후 준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자가(自家) 수요는 틀어막고 ‘유럽처럼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자’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여당은 부동산 문제에 대해 구심체 없이 자기들끼리 치고받기만 할 뿐 치밀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정책 당국자들이 이러니 대통령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동시에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는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원 지사는 최근 여권에서 제기된 행정수도 이전, 권력구조 개편 등을 위한 개헌론에 대해 “나는 의원내각제 개헌을 주장해 왔지만 ‘하산 길’에 접어든 현 정권이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며 부정적 시각을 내비쳤다.
‘다른 대선 주자에 비해 야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국회의원 시절(2000~2012년) 개혁 소장파로서 이회창 한나라당(통합당 전신) 총재, 박근혜 전 대통령 등과 대립각을 세웠던 것을 아는 사람은 그런 말을 못할 것”이라며 “대선 레이스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내 색깔을 분명하게 내겠다”고 했다. "정치적 야성·콘텐츠 약하지 않아…연내 부동산·교육대안 내놓겠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4·15 총선에서 소속 정당인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직후 “내 평생 가장 치열한 2년을 살겠다”며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의 대권 후보 물망에 올랐던 그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전보다 콘텐츠가 풍부해지고 대권 의지도 강해졌다”며 여러 차례 “3년 전 나를 잊어달라”고 했다. ‘다른 대선 주자에 비해 콘텐츠가 약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속단하지 말아달라”며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부동산 및 교육 문제,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대안 패키지(묶음)를 제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확고한 시장주의자’라고 칭하면서도 “부동산과 교육 문제에 관한 한 당내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지사는…
원희룡 제주지사는 16·17·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중앙정치와 지방행정을 두루 경험한 미래통합당 내 대표적인 개혁 소장파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올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부임했다. ‘정치 물갈이’를 선언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 제의를 받고 검사직을 사임한 뒤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서울 양천갑에서 출마해 내리 3선을 했다.
의원 시절 당내 소장파인 이른바 ‘미래연대’를 이끌었다. 원 지사와 공동대표였던 남경필 전 경기지사, 정병국 전 의원의 이름을 딴 ‘남원정’은 지금도 개혁 소장파의 상징으로 회자되고 있다.
2007년 대선, 2011년에는 당대표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후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가 제주지사 선거에 도전한 그는 보수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1989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92년 34회 사법시험 합격
△1995년 서울지검 검사
△1998년 원희룡 법률사무소 개업
△2000년 한나라당 입당
△2000~2012년 16·17·18대 국회의원
△2002년 미래를위한청년연대 공동대표
△2007년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 출마
△2010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2011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2014년~ 제주지사
하헌형/성상훈 기자 hhh@hankyung.com
원 지사는 이날 제주특별자치도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은 노후 준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자가(自家) 수요는 틀어막고 ‘유럽처럼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자’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여당은 부동산 문제에 대해 구심체 없이 자기들끼리 치고받기만 할 뿐 치밀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정책 당국자들이 이러니 대통령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동시에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는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원 지사는 최근 여권에서 제기된 행정수도 이전, 권력구조 개편 등을 위한 개헌론에 대해 “나는 의원내각제 개헌을 주장해 왔지만 ‘하산 길’에 접어든 현 정권이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며 부정적 시각을 내비쳤다.
‘다른 대선 주자에 비해 야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국회의원 시절(2000~2012년) 개혁 소장파로서 이회창 한나라당(통합당 전신) 총재, 박근혜 전 대통령 등과 대립각을 세웠던 것을 아는 사람은 그런 말을 못할 것”이라며 “대선 레이스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내 색깔을 분명하게 내겠다”고 했다.
"정치적 야성·콘텐츠 약하지 않아…연내 부동산·교육대안 내놓겠다"
대권도전 시동 건 원희룡
원희룡 제주지사는 4·15 총선에서 소속 정당인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직후 “내 평생 가장 치열한 2년을 살겠다”며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의 대권 후보 물망에 올랐던 그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전보다 콘텐츠가 풍부해지고 대권 의지도 강해졌다”며 여러 차례 “3년 전 나를 잊어달라”고 했다. ‘다른 대선 주자에 비해 콘텐츠가 약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속단하지 말아달라”며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부동산 및 교육 문제,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대안 패키지(묶음)를 제시할 계획”이라고 했다.그는 스스로를 ‘확고한 시장주의자’라고 칭하면서도 “부동산과 교육 문제에 관한 한 당내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케네디(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케네디는 젊고 진취적인 리더십을 지닌 분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부흥기에 젊은 활력, 미래를 향한 강한 추진력을 보였습니다. 그런 에너지를 갖고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의미입니다.”▷2007년 대선(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2007년이나 지금이나 제가 가진 근본 가치와 방향성은 같습니다. 6년간의 제주지사 경험이 더해지면서 그때보단 인재 풀이 넓어지고 정책 실현 능력도 성숙해졌습니다.”▷당내 대선 경쟁자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승민 전 의원과 이미지가 겹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책 메시지를 놓고 보면 제가 더 일관성이 있습니다. 오 전 시장이 2011년 무상급식 찬반 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쳤을 때 당에서 저 혼자 찬성을 외쳐 왕따를 당했습니다. ‘원조 친박(친박근혜)’인 유 전 의원은 2010년께 갑자기 개혁적 정책을 들고나왔죠. 개혁 성향의 보수 인사가 많아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원희룡이 없었다면 보수 정당의 개혁사도 쓰지 못했을 겁니다. 저처럼 ‘영호남 지역주의’ 구도에서 자유로운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제주 출신이란 점이 대선에서 오히려 지역적 한계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그만큼 잠재적인 확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제주 출신이 오히려 강점이 될 겁니다.”▷스스로 보수 야권에서 가장 ‘왼쪽’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죠. 다만 저는 발전에 관한 한 확고한 시장주의자이자 자유민주주의자입니다. 대신 빈부격차 해소와 교육 기회 확대, 불로소득 환수 등에 대해선 좌파적인 정책이라도 쓸 생각입니다. 이런 점에선 제가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보다 더 개혁적이고 진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개혁적 보수는 어떤 의미인가요.
“흔히 변화를 거부하는 쪽이 보수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변화에 장애가 되는 기득권을 끊임없이 교체시키는 게 개혁적 보수라고 생각합니다. 학벌, 인맥, 전관예우, ‘아빠 찬스’ 없이도 실력과 노력만으로 뭐든지 도전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죠.”▷김종인 위원장은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했는데요.
“보수라는 말 자체에 ‘변화를 거부한다’는 뜻이 내포된 것으로 비치니까 김 위원장도 그렇게 얘기한 겁니다. 저는 보수가 변화를 주도하는 면이 있으니 그 정신은 그대로 이어가자고 주장하는 것이고요.”▷요즘엔 통합당 내에 개혁 소장파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것 같습니다.
“2008년 집권당이 된 이후엔 당내 대다수 의원이 정권 입맛을 따라가기 바빴던 것 같습니다. 개혁파도 흐트러지고…. 그러다 보니 결국 친이(친이명박)와 친박 간 계파 싸움만 격화되고 개혁도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이죠.”▷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유지돼온 30대 지지세가 최근 다소 약해졌습니다.
“집값 폭등과 취업난으로 젊은 사람들이 삶의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합당은 이런 문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기보단 젊은 세대와 중산층이 제대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면 됩니다.”▷여권의 ‘586그룹’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권력화됐고 또 다른 기득권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쓰는 데 밀레니얼 세대(1982~2000년생)가 분노하고 있죠. 조국·윤미향 사태에서 보듯, 일반적인 586세대는 권력화된 586그룹이 보이는 위선과 독선적 오만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더불어민주당이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분열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보수 진영에 가장 각을 세웠던 카리스마적 인물입니다. 그분이 빠지면 당내 분란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튀는 백팔번뇌(당내 개성이 강한 초선 의원들을 비유하는 말)를 프라이팬 하나에 담을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죠.”▷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야권 1위에 올랐는데요.
“선거와 국정 운영은 다양한 세력을 하나로 모아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입니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단련된 사람도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윤 총장은 준비와 단련이 안 돼 있으면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과거 대선에서 많이 봤지 않습니까.”▷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연대나 통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찐문(진짜 친문재인)’과 극보수 세력만 아니라면 최소 51% 표를 얻을 때까지는 끊임없이 연합하고 세를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희룡 지사는…
학력고사 수석·3선 의원…야권 개혁소장파 상징
원희룡 제주지사는 16·17·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중앙정치와 지방행정을 두루 경험한 미래통합당 내 대표적인 개혁 소장파다.중학교 3학년 때까지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올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부임했다. ‘정치 물갈이’를 선언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 제의를 받고 검사직을 사임한 뒤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서울 양천갑에서 출마해 내리 3선을 했다.
의원 시절 당내 소장파인 이른바 ‘미래연대’를 이끌었다. 원 지사와 공동대표였던 남경필 전 경기지사, 정병국 전 의원의 이름을 딴 ‘남원정’은 지금도 개혁 소장파의 상징으로 회자되고 있다.
2007년 대선, 2011년에는 당대표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후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가 제주지사 선거에 도전한 그는 보수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약력
△1964년 제주 서귀포시 출생△1989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92년 34회 사법시험 합격
△1995년 서울지검 검사
△1998년 원희룡 법률사무소 개업
△2000년 한나라당 입당
△2000~2012년 16·17·18대 국회의원
△2002년 미래를위한청년연대 공동대표
△2007년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 출마
△2010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2011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2014년~ 제주지사
하헌형/성상훈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