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종부세 강화로 역세권청년주택에서 손을 떼는 민간 사업자들이 나오고 있다. 올초 입주한 제1호 역세권청년주택인 서울 충정로 어바니엘.  한경DB
법인 종부세 강화로 역세권청년주택에서 손을 떼는 민간 사업자들이 나오고 있다. 올초 입주한 제1호 역세권청년주택인 서울 충정로 어바니엘. 한경DB
안정적인 민간임대 시장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민간임대에 뛰어든 기업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법인을 악용하는 투기세력을 막겠다며 법인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기존 4년 단기임대 사업자 연장이 불가능해지면서 수익의 다섯 배가 넘는 세금을 낼 상황에 몰렸다.

서울시가 안정적인 주거복지 실현을 위해 8만 가구 규모로 야심차게 추진한 역세권청년주택(공공지원 민간임대) 역시 반쪽짜리 성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8만 가구 역세권청년주택 어쩌나

29일 임대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세법 개정을 통해 모든 법인을 대상으로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6%) 적용을 예고하면서 임대 사업을 하는 법인들이 사업 중단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는 앞서 ‘6·17 부동산 대책’과 ‘7·10 대책’ 등을 통해 법인에 대한 부동산 세금 부담을 크게 높였다. 다주택 법인은 중과 최고세율(6%)을 적용하고, 종부세액에 대한 기본공제 6억원과 세 부담 상한선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임대료 연 5% 이내 상승 등 특정 요건을 갖추면 받을 수 있었던 종부세 합산 배제 혜택도 사라진다.

이 여파로 역세권청년주택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세권청년주택 사업은 서울시가 대표적인 주거복지 정책으로 육성하고 있는 공공지원 민간임대 사업으로 대부분 도시형 생활주택 형태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역세권 고밀개발을 한시적으로 허용해 이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올 1분기 인허가 물량은 3만1500여 가구다.

기재부는 집을 지어서 임대하는 건설임대 주택에 대해선 종전처럼 종부세 합산 배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예외를 적용할 방침이지만, 문제는 집을 사서 임대하는 매입임대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8년 임대가 끝난 뒤 주택을 넘겨받을 사업자는 여전히 종부세 폭탄을 맞기 때문에 출구 전략이 불확실하다”며 “기본적으로 매입임대가 살아야 건설임대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역세권청년주택 사업에 뛰어든 상당수 기업이 일부 사업장을 포기하는 등 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다른 임대 사업자에게 넘기지 못하면 개별 분양밖에 방법이 없다”며 “하지만 다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주택으로 분류되는 역세권청년주택을 개별 매입하겠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정부 믿고 시작했는데 ‘뒤통수’

정부의 말을 믿고 임대 시장에 뛰어든 기업 중 상당수가 수십억원의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 정부는 이번에 등록임대 사업자 제도도 개편해 4년 단기임대 및 아파트 장기일반 매입임대를 폐지했다. 단기임대의 신규 등록과 장기임대로의 유형 전환이 불가능해졌다.

4년 단기임대를 등록하고 민간임대 사업을 하는 A업체 관계자는 “수익이 3억원 정도 나는데 1년에 내야 할 종부세만 16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민간임대를 장려할 땐 언제고 손바닥 뒤집듯 바뀐 정책으로 손해가 크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세금 폭탄을 피하려면 당장 매각해야 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초기비용을 감수하고 임대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임대주택이 매각되는 것은 주거복지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기업이 대규모로 임대하면 개개인이 할 때보다 안정적인 주택 공급과 관리가 가능하다”며 “애초에 이런 취지로 시작해놓고 지금은 나 몰라라 하는 격”이라고 강조했다.

국토부 등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민간임대특별법을 제정하고 중산층을 위한 뉴스테이(민간기업형 임대주택) 제도를 도입해 임대주택 사업을 장려했다. 여기에 맞춰 SK D&D와 KT에스테이트, 해피투게더하우스, 신영 등 시행사뿐 아니라 이지스자산운용, 미래에셋대우(멀티에셋자산운용) 등도 임대 사업에 뛰어들었다.

업계에서는 적격 사업자제도 등을 신설해 포괄적인 종부세 합산 배제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애초부터 정상적인 사업을 하는 법인에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로 국토부와 논의해왔다”며 “다만 형평성 등을 감안해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연말까지 세부 내용을 담은 시행령 개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