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을 보면 몸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까지 많이 아픈 것 같아요. 위로와 축복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리 서로 안부를 물어줘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올해 등단 50년을 맞은 나태주 시인(75·사진)이 최근 산문의 어법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96편의 이야기를 엮은 《부디, 아프지 마라》(시공사)를 펴냈다. 첵 제목은 그가 긴 암투병을 털어내고 쓴 시 ‘멀리서 빈다’ 중 마지막 시구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에서 따왔다. 나 시인은 29일 “70대 후반에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회고와 반성, 삶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특히 젊은 세대에게 ‘당신들은 지금 충분히 좋은 게 많으니 깨닫고 찾아 살았으면 좋겠다’고 축복하고 당부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산문집에 어린 시절 깊은 산골의 아련했던 장면들부터 ‘늙은 아이 시인’으로서 꿈꾸는 미래의 자기 모습, 언젠가 다가올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사유 등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냈다. 수록된 산문들을 관통하며 내내 강조하는 것은 ‘타자에 대한 애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람들 모두 자기 보전이 어려운 시대가 됐어요. 거기서 헤쳐나오려면 타인을 철저히 배려해야 해요. 우리가 마스크를 쓰는 것도 자신을 넘어 타인도 함께 보전하겠다는 배려죠.”

‘메멘토 모리’란 제목의 산문에는 시간과 늙어감에 대한 그의 깊은 생각이 묻어난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 언젠가는 너도 죽는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는 라틴어다. 그는 수록된 96편 중 이 산문에 가장 애착을 느낀다고 했다. “세상에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빌릴 수도, 빌려줄 수도 없는 시간이에요. 생화가 조화보다 아름다운 건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기 때문이듯,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아름답고 싱싱하게 순간순간 반짝이도록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 거죠.”

나 시인은 2007년 교장 퇴임을 앞두고 췌장암으로 오랜 기간 생사를 오가며 투병했다. 그는 “기적적으로 회복해 13년째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투병하며 첫날처럼 마지막 날을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단 걸 이해하게 됐어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가장 좋은 시는 회복기에 나온다’고 했듯, 저 역시 이제 13세 어린아이와 같은 눈으로 회복기 시를 쓰고 있어요. 생명의 결핍이 있는 겨울을 지나 봄에 생명이 만개하듯, 죽음이란 떠나서 억울하고 분한 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위한 축복이자 변치 않는 생명의 가치라는 걸 많은 이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