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의 데스크 칼럼] 독주보다 입법무능 걱정하는 與
4·15 총선 후 100일이 지났다. 16년 만에 여당 ‘단독 과반’의 압승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세를 몰아 18개 전 상임위원회를 장악했다.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싹쓸이한 건 33년 만이다. 애초 여야 11 대 7의 배분은 호사가들의 예상이었다. 176석 거대 여당의 ‘폭주’ 속에 제1야당이 법제사법위원장을 맡는 관행도 깨졌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169석(전 상임위원장을 차지할 수 있는 의석수)이 넘었으니 당신들(야당) 도움은 필요 없다”고 했고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다 가져가라”고 맞대응했다.

이미 시작된 입법 독주

민주당의 상임위 독식은 ‘입법 독주’의 서막이었다. 민주당은 지난 28일 소관 상임위에서 부동산 관련 11개 법안을 단독 상정·처리했다. 7·10 대책 등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제도화하는 법이다. 여당은 소관 부처 업무보고와 소위원회 심사, 찬반토론 등의 절차를 철저히 무시했다. 법안심사 소위 운영의 만장일치 관행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런 판국이라면 야당이 ‘독재 고속도로’라고 칭하는 ‘일하는 국회법(국회법 일부 개정안)’도 필요 없을 듯하다. 야당의 법안 처리 견제 수단인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 폐지, 상시 국회 개최 등이 담긴 법안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입법 계획을 이미 짜놨다. 5대 과제, 80개 법안이다. 코로나 국난극복 법안과 포스트 코로나 선도법안, 민생안정법안, 경제·사회 개혁법안, 국정과제 법안 등 이름만 들으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하나씩 들여다보면 걱정이 앞선다.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이른바 ‘재벌개혁 3법’을 비롯해 상생협력법, 유통산업발전법,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반기업법 일색이다. 위헌 논란을 빚을 만한 법도 수두룩하다. 재추진하려는 행정수도이전특별법은 16년 전 위헌 판결을 받았다. 부동산 관련 법에서도 ‘임대차 3법 소급적용’ ‘실거주 2년 의무화’ 등은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민주당 의원들은 다주택 고위공직자의 승진과 임용 제한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과도한 재산권 침해가 우려되는 법이다. “헌법도 없냐”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너무 다른 여당의 지지율 해석

더 큰 문제는 이런 법들이 공청회나 야당의 견제도 없이 속전속결로 처리된다는 점이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대선 국면으로 접어드는 내년 3월 이후에는 법안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전에 문재인 정부 국정 철학을 실현할 법안들을 신속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입법·예산편성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란 예고다. 국회가 통법부(通法府)로 전락하고 있다.

여당의 오만과 독주에 국민 반감도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웃돌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민주당과 통합당 지지율이 오차범위 안으로 좁혀졌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의혹 등의 영향이 크다. 독주하는 정권에 대한 견제심리도 깔려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애써 태연한 표정이다. 여론조사 결과의 원인에 대해선 뜻밖의 해석을 내놨다. ‘우리 이니(문 대통령)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고 거대 여당을 만들어줬는데, 민주당이 이에 부응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줘도 못 먹나’는 지지층의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오만·독주보다 더 나쁜 건 입법 무능”이라며 속도전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무소불위 여당은 앞으로 더 거세게 밀어붙일 태세다. 8월 4일 임시국회 본회의, 9월 정기국회가 벌써부터 섬뜩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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