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아파트'처럼 '이재명 아파트' 나온다는데 [전형진의 복덕방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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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신도시 물량 절반은 이미 공공인데
"경기도식 기본주택 50% 이상 짓겠다"
"경기도식 기본주택 50% 이상 짓겠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주택’ 개념을 꺼냈습니다.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당장 3기 신도시부터 기본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이죠. 그런데 사실 3기 신도시 물량 절반가량은 이미 공공주택입니다. 실제 공급이 늘기보단 유형만 더욱 세분화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죠.
이 지시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은 ‘경기도 기본주택’과 ‘임대조건부 분양’이 핵심이죠. 임대조건부 분양은 토지를 시행자에게 남기고 건물만 분양하는 형태의 주택입니다. 기본주택은 30년짜리 장기공공임대죠. 기존 임대주택이 영세 서민 대상인 것과 달리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입주할 수 있는 게 차이입니다. 이 지사는 3기 신도시 물량의 절반 이상을 기본주택으로 공급한다는 구상을 세웠죠.
그런데 택지별 주택공급 유형과 물량을 이 지사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차근차근 따져볼까요. 정부가 3기 신도시와 함께 발표한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계획’의 25개 택지(왕숙1·2신도시는 따로 집계) 가운데 경기도나 경기주택도시공사가 시행자로 참여한 곳은 8개 택지 18만 가구 정도입니다. 여기서 경기주택도시공사가 단독으로 시행하는 건 4800가구 규모의 광명 학온지구가 유일합니다. 하남 교산신도시(3만200가구)나 부천 대장신도시(2만 가구), 안산 장상지구(1만3000가구) 등 중·대규모 택지는 대부분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해당 지자체, 또는 지자체 도시공사와 함께 시행하는 형태죠. 기본주택 공급을 위해선 이들 시행자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공공택지 물량의 절반 이상을 기본주택으로 공급한다는 목표도 정부의 기존 공급계획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택지 조성의 근거가 되는 법인 ‘공공주택 특별법(공특법)’은 이미 전체 가구수의 50% 이상을 공공주택으로 짓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죠. 공공주택은 다시 공공분양과 공공임대로 나뉩니다. 여기서 공공분양은 전체의 25% 이하, 공공임대는 35% 이상입니다. 이를 제외한 민간분양은 아무리 많아도 절반 이하라는 의미죠.
과거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으로 조성된 신도시는 공공주택 비율이 20~30% 선에 그쳤습니다. 검단신도시는 24%, 한강신도시는 34%입니다. 하지만 이젠 택촉법이 아니라 공특법으로 택지를 조성하죠. 최근 이렇게 조성된 택지의 공공주택 비율은 대부분 80% 안팎입니다. 고덕강일지구는 77%, 항동지구와 내곡지구는 80%에 이릅니다. 이 지사가 목표로 내건 기본주택 물량 확대는 전체 공공주택의 규모를 키운다기보단 이미 정해진 물량이 세분화되는 것에 가깝다는 이야기죠. 물론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집값 안정을 위한 대책이란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책의 세밀함까지 더해졌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사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주거종합계획’을 통해 복잡한 임대주택 유형을 통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행복주택, 국민임대, 영구임대…. 유형도 조건도 각각 다르고 복잡해 혼란이 큰 만큼 이를 모두 합쳐서 2022년부턴 이름과 입주 자격까지 단순화하겠다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여기에 기본주택이란 개념이 다시 얹어진다면 통합의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겠죠.
이 지사는 신축주택의 공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매입수요를 줄여야 집값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양질의 공공주택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말잔치보단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사실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죠.
오 전 시장은 재임 시절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이란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재개발·재건축단지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공공주택을 짓게 하고,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이를 사들여 주변 임대료의 80% 수준에 공급하는 것이죠. 이름만 들으면 아는 강남 웬만한 아파트에도 이런 시프트가 있습니다. ‘오세훈 아파트’로도 불리죠. 무주택 중산층을 위한 양질의 공공주택이란 점에서 오 전 시장의 시프트와 이 지사의 기본주택은 맥락이 비슷합니다.
▶한국경제신문 2019년 6월 18일자 A27면 <중산층 장기전세 ‘오세훈 아파트’ 사라진다> 참조
그래서일까요. 오 전 시장은 이 지사 기본주택 정책을 공개적으로 응원하면서 박수까지 보냈습니다. 대권주자라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죠. 그런데 한때 혁신적이란 평가를 받았던 오 전 시장의 시프트는 지금 폐지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보증금 수익은 제한된 반면 비용은 계속 증가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월세가 아닌 전세인 것도 SH의 현금흐름이 막히는 이유였죠. 이 지사의 기본주택 구상처럼 ‘너무 낮지 않은 임대료’ 때문에 공가도 많았습니다. 집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도 수요자들이 오히려 매매시장에 눈을 돌리게 했죠.
국회에선 경쟁적으로 부동산이나 세금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죠. 이름을 알리려는 의원들의 심정을 모른 척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집값을 세금으로 때려잡을 묘안보단 창의적인 공급 확대 방안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정책이 얼마나 영글었는지를 떠나서 생산적 논의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이 지시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은 ‘경기도 기본주택’과 ‘임대조건부 분양’이 핵심이죠. 임대조건부 분양은 토지를 시행자에게 남기고 건물만 분양하는 형태의 주택입니다. 기본주택은 30년짜리 장기공공임대죠. 기존 임대주택이 영세 서민 대상인 것과 달리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입주할 수 있는 게 차이입니다. 이 지사는 3기 신도시 물량의 절반 이상을 기본주택으로 공급한다는 구상을 세웠죠.
그런데 택지별 주택공급 유형과 물량을 이 지사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차근차근 따져볼까요. 정부가 3기 신도시와 함께 발표한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계획’의 25개 택지(왕숙1·2신도시는 따로 집계) 가운데 경기도나 경기주택도시공사가 시행자로 참여한 곳은 8개 택지 18만 가구 정도입니다. 여기서 경기주택도시공사가 단독으로 시행하는 건 4800가구 규모의 광명 학온지구가 유일합니다. 하남 교산신도시(3만200가구)나 부천 대장신도시(2만 가구), 안산 장상지구(1만3000가구) 등 중·대규모 택지는 대부분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해당 지자체, 또는 지자체 도시공사와 함께 시행하는 형태죠. 기본주택 공급을 위해선 이들 시행자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공공택지 물량의 절반 이상을 기본주택으로 공급한다는 목표도 정부의 기존 공급계획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택지 조성의 근거가 되는 법인 ‘공공주택 특별법(공특법)’은 이미 전체 가구수의 50% 이상을 공공주택으로 짓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죠. 공공주택은 다시 공공분양과 공공임대로 나뉩니다. 여기서 공공분양은 전체의 25% 이하, 공공임대는 35% 이상입니다. 이를 제외한 민간분양은 아무리 많아도 절반 이하라는 의미죠.
과거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으로 조성된 신도시는 공공주택 비율이 20~30% 선에 그쳤습니다. 검단신도시는 24%, 한강신도시는 34%입니다. 하지만 이젠 택촉법이 아니라 공특법으로 택지를 조성하죠. 최근 이렇게 조성된 택지의 공공주택 비율은 대부분 80% 안팎입니다. 고덕강일지구는 77%, 항동지구와 내곡지구는 80%에 이릅니다. 이 지사가 목표로 내건 기본주택 물량 확대는 전체 공공주택의 규모를 키운다기보단 이미 정해진 물량이 세분화되는 것에 가깝다는 이야기죠. 물론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집값 안정을 위한 대책이란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책의 세밀함까지 더해졌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사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주거종합계획’을 통해 복잡한 임대주택 유형을 통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행복주택, 국민임대, 영구임대…. 유형도 조건도 각각 다르고 복잡해 혼란이 큰 만큼 이를 모두 합쳐서 2022년부턴 이름과 입주 자격까지 단순화하겠다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여기에 기본주택이란 개념이 다시 얹어진다면 통합의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겠죠.
이 지사는 신축주택의 공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매입수요를 줄여야 집값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양질의 공공주택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말잔치보단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사실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죠.
오 전 시장은 재임 시절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이란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재개발·재건축단지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공공주택을 짓게 하고,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이를 사들여 주변 임대료의 80% 수준에 공급하는 것이죠. 이름만 들으면 아는 강남 웬만한 아파트에도 이런 시프트가 있습니다. ‘오세훈 아파트’로도 불리죠. 무주택 중산층을 위한 양질의 공공주택이란 점에서 오 전 시장의 시프트와 이 지사의 기본주택은 맥락이 비슷합니다.
▶한국경제신문 2019년 6월 18일자 A27면 <중산층 장기전세 ‘오세훈 아파트’ 사라진다> 참조
그래서일까요. 오 전 시장은 이 지사 기본주택 정책을 공개적으로 응원하면서 박수까지 보냈습니다. 대권주자라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죠. 그런데 한때 혁신적이란 평가를 받았던 오 전 시장의 시프트는 지금 폐지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보증금 수익은 제한된 반면 비용은 계속 증가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월세가 아닌 전세인 것도 SH의 현금흐름이 막히는 이유였죠. 이 지사의 기본주택 구상처럼 ‘너무 낮지 않은 임대료’ 때문에 공가도 많았습니다. 집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도 수요자들이 오히려 매매시장에 눈을 돌리게 했죠.
국회에선 경쟁적으로 부동산이나 세금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죠. 이름을 알리려는 의원들의 심정을 모른 척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집값을 세금으로 때려잡을 묘안보단 창의적인 공급 확대 방안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정책이 얼마나 영글었는지를 떠나서 생산적 논의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