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칼럼] 재원논의 빠진 상병수당 도입
전 국민 고용보험제에 이어 상병수당 도입이 기정사실화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포함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소득감소분을 보전해 주는 수당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노사정대타협에서 노동계 요구사항으로 등장하더니 곧이어 이달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뉴딜 종합계획에 포함됐다. 내년에 연구용역을 거쳐 2022년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구체적 일정까지 제시됐다.

코로나19 위기가 진행형이어서 그런지, 상병수당에 대해서는 논란이 별로 없다. 지난 5월 초 여당, 청와대가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계획을 밝히자 비판 여론이 확산했던 것과 비교된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놓고는 △고용보험 기금 고갈 △특수고용직 종사자 및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 △대상자의 가입 기피 문제 등이 집중 제기됐다.

코로나가 소환한 상병수당

가구주가 질병으로 일할 수 없게 되면 치료비 부담에 소득감소까지 가족 전체가 빈곤해질 위험이 높다. 이런 경우를 대비한 상병수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다수가 지급한다. 길드로 불리는 동업조합에서 실시한 상호부조제도에 뿌리가 있다. 현대적인 의료기술 체계가 발달하면서 상병수당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직접 치료비 보장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져 왔다. 독일은 1885년 건강보험급여에서 상병수당이 63%를 차지했지만 2003년에는 7.7% 수준으로 감소했다.

국내에서도 상병수당은 코로나19 이전까지 생소했지만 국민건강보험법에 지급 근거가 마련돼 있다. 임신·출산 진료비와 함께 규정돼 있다. 다만 재원 문제로 아직 지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017~2019년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 상병수당이 도입되면 지급률(평균 임금의 50~70%)과 지급기간(16~180일)에 따라 적게는 연간 8000억원, 많게는 2조8000억원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가뜩이나 ‘문재인 케어’로 건보 재정이 급속도로 소진되는 상황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2018년 20조원이던 건강보험기금 적립금이 이르면 2021년 고갈된다는 예측도 있다. 실업급여의 예처럼 도덕적 해이나 부정수급까지 고려하면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재원 부담 방안은 없어

지난 4월 국회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상병수당 도입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1조~2조원의 추가 재원이 들어가는 상병수당보다는 ‘건강보험 급여 확대’에 더 시급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상병수당을 도입할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요구로 시작됐던 원포인트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노동계는 즉시 상병수당을 도입하되 정부가 재정을 동원하라고 요구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재정 지출이 급증한 데다 경제 위축으로 세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경제부처는 난색을 보였다.

복지부도 진퇴양난이다. 결국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16년 0.9% 인상, 2017년 동결됐던 건보료는 2018년 2.0%, 2019년 3.5%, 2020년에 3.2%로 가파르게 올랐다. 연평균 3.2%를 올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여기에다 상병수당이 추가 도입되면 결국 건보료를 올리는 것 외에는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다.

그렇지만 코로나19로 가입자들의 부담 능력은 크게 줄었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된 항공업계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 납부도 유예 중이다. 오는 8월 내년 건보료 인상률을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눈길이 집중된다.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