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대선 연기론을 거론한 지 9시간 만에 “나는 (대선) 연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한발 물러섰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친정인 공화당마저 거세게 반발하자 대선 연기론을 번복한 것이다. 하지만 우편투표는 여전히 문제라고 강조했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대선 연기 관련 질문에 “나는 연기를 원치 않는다. 선거를 하길 원한다”며 오는 11월 3일 대선을 예정대로 치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개표 결과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하고 그러고 나서 투표지가 모두 사라져 선거가 아무 의미 없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우편투표 확대에는 반대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트위터를 통해 우편투표가 ‘사기를 치는 선거’를 만들 것이라며 “사람들이 적절하고 안전하고 무사히 투표할 수 있을 때까지 선거를 미룬다?”라고 썼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실패론과 맞물려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대선 연기 가능성을 떠봤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공화당에서조차 거센 반발이 일었다.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는 “연방 선거 역사상 선거를 미룬 적은 결코 없다”며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親)트럼프계로 알려진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선거 연기는 좋은 생각이 아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선거일 조정 권한도 없는 대통령이 국면 전환용 꼼수를 시도한 것이라며 일정 변경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릴리 애덤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대변인은 “트럼프의 이번 위협은 파멸적인 경제지표를 물타기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9.5%(연율 기준 -32.9%)를 기록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존 루이스 하원의원 장례식 추도사에서 “우편투표를 훼손함으로써 대선을 좌절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권력자들이 있다”며 트럼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미국 헌법상 선거의 시기와 장소, 방식 조정 권한은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에 있다. 또 하원 다수당이 민주당임을 감안할 때 대선 연기는 쉽지 않다는 게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