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산하 지진진상조사위 보류 요청에도 철거 강행
포항시장 현장 찾아 업체와 협의…"철거 잠정 중단"
경북 포항지진을 촉발한 포항지열발전소의 시추기가 철거에 들어가자 포항시 정치권과 시민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2일 오후 포항 북구 흥해읍 포항지열발전소 앞에는 김성조 시의원과 임종백 11·15 포항촉발지진 흥해지진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시민, 공무원 등 포항 각계 인사 50여명이 집결했다.

이들은 지열발전소 울타리 안에 있던 작업자 4명에게 "시추기 철거를 중단하라"고 외쳤다.

일부 시민은 한때 바로 옆 왕복 4차로 도로로 나가 드러눕거나 철거 중단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나가는 등 격앙된 분위기를 보였다.

이들이 지열발전소 시추기 철거에 반발하는 것은 포항지진 진상조사에 필요한 증거자료가 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포항시 등에 따르면 1일과 2일 사이에 시추기 일부가 철거됐다.

크레인을 동원해 일부 시추기 구조물을 떼어낸 뒤 바닥에 내려놓아 시추기 주변은 어지러웠다.

포항시와 포항11·15촉발지진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 등은 그동안 포항지진 진상조사를 마무리하려면 포항지열발전소 부지 확보와 시추기 등 관련 시설과 물품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포항지열발전 시추기 본체와 머드펌프 등 시추장비 소유권을 지닌 신한캐피탈은 지난 2월 13일 인도네시아 업체에 160만달러(한화 약 19억2천만원)에 시추기를 매각했다.

장비를 사들인 인도네시아 업체는 기술자를 투입해 지난달 15일부터 시추기 철거를 위한 주변 정리 작업을 했다.

이에 국무총리 산하 지진진상조사위원회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 지열발전 사업 부지를 보전하고 시추기, 폐수, 시추암편 등 관련 물건을 보관하도록 지난달 2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채권단에 공문을 보냈다.

그런데도 신한캐피탈이나 시추장비를 사들인 업체 측은 위원회 통보를 무시한 채 철거를 강행했다.

이에 시는 2일 부시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고서 시추기 철거를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벌이기로 했다.

이강덕 시장은 이날 오후 급하게 현장을 방문한 뒤 업체 측과 협의해 2일에는 더는 철거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끌어냈다.

현장에 모여든 시민과 시민단체 관계자, 시의원 등은 이 시장의 설명을 듣고서 자리를 떴다.

한 시민은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지진진상조사위원회 요청도 안 받아들이는 채권단과 매입업체, 철거업체 등에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는 시추기 철거 문제와 관련해 3일 진상조사위, 산업부, 에너지기술평가원, 시가 참여하는 긴급 합동회의를 열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가 포항지진 증거물로 시추기를 보존해야 한다고 결정한 만큼 관련 기관과 소유주는 위원회 결정을 존중해 철거를 보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