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워싱턴엔 임대법 '뚝딱 통과' 없었다
미국 수도 워싱턴DC는 임대료를 통제하는 도시 중 하나다. 한국에서 여당 의원들이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강행 처리하면서 해외 사례 중 하나로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워싱턴DC의 임대료 통제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한 채라도 세를 놓는 모든 집주인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고, 임대료 통제의 예외조항이 많으며, 시의회가 임대료 통제를 강화하자는 세입자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워싱턴DC는 1985년부터 ‘임대주택법’에 따라 임대료를 통제해 왔다. 대상은 1975년 이전 지어진 낡은 아파트다. 개인 소유의 4가구 이하 임대건물은 대상이 아니다. 저소득층 주거안정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지, 한국처럼 모든 주택의 임대료를 묶어놓겠다는 정책이 아니다. 임대료 통제를 받는 아파트의 임대료 상한선은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2%’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보통 1%대라는 걸 고려하면 상한선은 연 3%대 정도다.

'임대료 통제' 강화 안 해

하지만 이보다 더 임대료를 올릴 수 있는 예외조항이 많다. 예컨대 대대적인 집수리나 부대시설 증설 비용은 임대료에 반영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파트가 아무리 낡아도 임대업자가 집을 고칠 유인이 없어지고 결국 도시가 슬럼화될 수 있다는 현실을 고려한 조항이다.

심지어 임대업자는 임대 수익률이 연 12% 미만이면 임대료를 상한선보다 올려 받게 해달라고 시 당국에 청원할 수 있다. 기존 세입자가 나가고 새로운 세입자를 받을 땐 임대료를 최대 30%까지 올릴 수도 있다.

워싱턴DC의 임대료 통제는 최근 다시 논란이 됐다. 일몰조항에 따라 그대로 두면 올해 12월 31일 자동폐기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시의회는 지난해 9월 임대료 통제를 10년 더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세입자 단체 등은 법 연장은 물론 임대료 통제를 더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임대료 상한을 ‘소비자물가 상승률 이하’로 낮추고, 임대주택 대상도 ‘지은 지 15년 넘은 아파트’로 확대하자고 했다. 임대료 상한선을 피해갈 수 있는 각종 구멍도 메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세입자, 임대업자 같이 고려

반면 임대업자들은 일단 5년만 법을 연장하고, 임대료 통제 정책의 효과를 따져보자고 맞섰다. 임대료 통제로 임대주택 공급 부족, 주거관리 부실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다양한 소득계층의 주거안정을 위해선 임대료를 통제할 게 아니라 다양한 임대주택을 공격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했다.

시의회는 여러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공청회를 열었다. 시의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청회 회의록을 찾아보니 200명가량이 직접 참석하거나 서면으로 의견을 밝혔다. 시의회는 이를 토대로 지난달 23일 임대주택법을 10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세입자와 임대업자의 입장을 절충한 것이다. 이후 민주당 시의원 2명이 세입자 측 의견을 대폭 반영한 법 개정안을 내면서 임대차법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흥미로운 건 워싱턴DC 시의회는 14명의 시의원 중 12명이 민주당 소속이란 점이다. 나머지 2명은 무소속이다. 미국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 성향으로 보면 시의회가 일방적으로 세입자 편을 들 법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인 것이다.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임대차 법을 군사작전하듯 며칠 만에 뚝딱 처리한다는 건 이들에게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