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동네 사진관에서 늘 보았던 ‘KODAK(코닥)’ 로고. 노란색과 빨간색을 결합한 이 상표는 오랫동안 사진 필름의 대명사였다. 1888년 미국에서 창립한 코닥의 역사는 130년이 넘는다. 1975년 디지털카메라(디카)를 개발한 것도 이 회사다. 하지만 “디카가 필름을 위협한다”며 창고에 묵혀두는 바람에 몇 년 뒤 디카 상용화에 나선 일본 소니에 시장을 다 내줬다.

디지털 흐름에 뒤처진 코닥은 2012년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시대를 역행한 몰락 기업의 대표 사례로 거론됐다. 그런 코닥이 최근 코로나 사태를 지렛대 삼아 제약회사로 깜짝 변신했다. 필름 제조 과정에서 획득한 100여 가지의 화학물질 가공 기술을 활용해 미국 내 복제약 원료의 25%를 생산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가 7억6500만달러(약 9100억원) 규모의 대출을 승인하자 주가가 하루 만에 300%나 치솟았다.

코닥 필름이 코닥 제약으로 거듭난 것처럼 한때 세계 필름시장을 양분했던 후지필름도 바이오 회사로 탈바꿈했다. 후지는 필름의 주원료인 콜라겐으로 화장품을 만들고, 다양한 화학재료와 나노기술로 신사업을 펼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지난해 매출 218억8300만달러(약 26조원)의 43%가 헬스케어에서 나왔을 정도다.

소니 역시 ‘부활 신화’의 주역이다. TV·워크맨·디지털카메라 등으로 이름을 날리던 소니는 시장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허덕이다가 엔터테인먼트와 이미지 센서 기술로 되살아났다. 올해 초에는 자율주행차 콘셉트카까지 선보였다. 소니의 첨단 센서는 자율주행차의 눈 역할을 한다. 이런 게 다 기술혁신과 ‘제조 강점’에 집중한 결과다.

노키아의 변신도 극적이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중반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였던 노키아는 2007년 애플 아이폰의 등장 이후 쇠락했다. 그러다 2014년부터 통신장비 분야로 방향을 틀어 세계 3위의 5G 통신장비업체로 올라섰다.

이렇듯 도태될 뻔했다가 재기한 ‘골리앗 기업들’의 공통점은 독보적인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초격차 기술이 있어야 제품 차별화와 프리미엄 전략이 통한다. 코닥의 최고경영자 짐 콘티넨자도 “100년 이상 축적한 특허 기술과 첨단 화학처리 시설 덕분에 의약품 생산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미래 기업의 승부 또한 기술력에 달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