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베이루트 대폭발로 화염에 휩싸인 선박과 차량. 사진=연합뉴스
지난 4일 베이루트 대폭발로 화염에 휩싸인 선박과 차량. 사진=연합뉴스
미국 국방수장이 5일(현지시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초대형 폭발참사가 '사고'라는 진단을 내놨다. 이는 군 당국 관계자들의 판단을 내세워 '폭탄 공격'이라고 평가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언급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이날 원격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애스펀 안보포럼에서 "대부분은 사람들은 보도된 대로 그것이 사고(accident)였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고 CNN방송, 블룸버그통신 등이 보도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오전 레바논 폭발참사와 관련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미국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여전히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레바논 정부에 연락을 취했으며 지금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며 "인도적 지원이든 의약용품이든 레바논 국민을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떠한 지원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추가로 부연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날 발언은 '군 당국자들이 공격인 것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날 발언과 상반되는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지적했다.

국방수장 마저 공개적으로 '사고'에 무게를 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과 달리 '폭탄 공격'이 아닌 것으로 최종 드러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군 당국의 공식적 판단과 다르게 섣부른 진단을 내놓은 것이어서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내 원활치 못한 의사소통도 다시 한번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에스퍼 장관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 사태 당시인 지난 6월 3일 진압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군 동원 방침에 '항명'한 이래 '분열의 상징' 남부연합기(旗)의 사용금지 조치 단행 등을 비롯해 소신 언행을 이어왔고 이 과정에서 불화설이 제기됐다.

국무부가 이날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의 통화 사실을 전한 보도자료 상에도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폭발참사를 '끔찍한 폭발'로 칭한 것으로 돼 있다.

'공격'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브리핑에서 이번 폭발참사를 '끔찍한 공격'으로 규정, 자신이 이야기를 나눈 몇몇 군 장성들이 공격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일종의 공장 폭발과 같은 형태의 사고가 아니었다"며 "그것은 어떠한 종류의 폭탄이었다. 그렇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은 이번 참사가 폭발성 물질인 질산암모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는 현지 정부 발표와도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AP통신도 이날 고위 국방부 당국자들과 정보당국 관계자들이 이번 레바논 폭발이 특정 국가 또는 대리 세력에 의한 공격의 결과였다는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이번 폭발이 부적절한 폭발물 저장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AP에 전했다.

앞서 CNN도 국방 당국자들이 이번 폭발이 공격에 따른 것이었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전날밤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전날 오후 베이루트 항구에서 두 차례 큰 폭발이 발생해 현재까지 사망자가 최소 135명, 부상자가 약 5000명 발생하고 건물과 차량 등이 크게 파손됐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