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조망(뷰), 산 조망, 도심 조망.

아파트나 호텔 등을 소개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서울에서 '탁 트인 한강 조망'이란 얘기를 들으면 '한강공원과 멀지 않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아파트'를 떠올릴 수 있다.

경기 평택에선 부동산 물건을 소개할 때 '몬드리안 뷰'란 말을 쓴다고 한다. 삼성전자 직원이 한 말이다. 확인해보니 평택 인근 부동산들은 실제 '평택 고덕신도시 투룸 월세 몬드리안뷰', '저 멀리 보이는 몬드리안 모자이크' 같은 소개 문구를 쓰고 있었다. 몬드리안 뷰는 어디서부터 나온 말일까.

답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외벽 디자인에 있다. 현재 최첨단 D램과 낸드플래시를 생산 중인 평택 P1 공장,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활용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라인이 들어가는 P2 공장 외벽엔 빨강·노랑·파랑 사각형을 검은선으로 그린 디자인이 들어가있다. '추상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과 멀지 않다', '거실이나 안방 창문에서 삼성전자 공장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몬드리안 뷰'란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1공장(P1) 외벽 디자인. 한경DB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1공장(P1) 외벽 디자인. 한경DB
평택 뿐만 아니라 용인 기흥, 경기 화성에 있는 반도체공장엔 같은 디자인이 적용돼있다. 삼성전자는 공식 블로그에서 외벽 디자인에 대해 "몬드리안의 '컴포지션A'를 연상하게한다"고 설명한다.

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마다 같은 디자인일까. 삼성전자의 공식 설명은 "2010년 4월 삼성 나노시티 선포식을 계기로 아름다운 캠퍼스 환경을 갖추기 위해 외관을 감성적인 컬러와 그래픽으로 제작했다"는 것이다.

다른 분석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전제 미술을 알아야 산다'는 책의 저자 정장진씨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을 늘리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이어진 메모리반도체 슈퍼호황기를 '미리' 준비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몬드리안 외벽 디자인'을 꼽는다. 몬드리안 그림을 공장 외벽에 차용한 삼성전자를 보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한 오늘날의 산업적, 문명사적 대변혁을 추상화를 통해 예고한 몬드리안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내부에 공학적, 산업적 관점만으론 할 수 없는 선제적 투자를 가능하게 한 저력이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피에트 몬드리안의 추상화
피에트 몬드리안의 추상화
그렇다면 '누가' 몬드리안 디자인을 처음 선택하고 공장 디자인을 통일시켰을까. 삼성 관계자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전제로 "2010년대 초반 삼성 최고위층이 화성 반도체공장에 처음 적용된 몬드리안 디자인을 보고 마음에 들어하셨다. 이후 반도체 공장마다 몬드리안 디자인을 그려 넣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고위층은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권오현 당시 DS(반도체부품)부문 사장 등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삼성전자가 몬드리안 디자인을 차용할 때 지불하는 비용은 없다고 한다.

앞으로 평택에서 '몬드리안 뷰'를 누릴 수 있는 부동산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준공한 P1와 내년 가동을 앞둔 P2에 이어 세번째 공장인 P3 착공을 준비 중이다. 평택시로부터 지난 6월 세번째 공장인 P3 1층 건축허가를 받고 현재 기초 공사 중이다. 이르면 다음달 정식 착공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또 반도체 공장 3기(P4. P5, P6)를 더 착공하겠다는 계획을 평택시에 알리고 2025년까지 하루 25만t에 달하는 공업용수를 추가로 공급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2018년 8월 삼성전자 형택사업장을 방문한 김동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왼쪽 세번째)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앞줄 왼쪽 네번째)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경DB
2018년 8월 삼성전자 형택사업장을 방문한 김동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왼쪽 세번째)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앞줄 왼쪽 네번째)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경DB
삼성전자가 경기 평택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반도체 클러스터'로 육성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2012년 축구장 500개 크기인 392만7912㎡ 규모 평택 고덕산업단지 투자 계약을 평택시와 체결했다. 반도체 공장 한 기에 약 30조원의 자금이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는 향후 수 년 간 100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평택 공장 추가 건설에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5G(5세대)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정보기술(IT) 기기의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하고 반도체 수요가 덩달아 증가할 것을 예견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DS(반도체부품)부문 임직원들은 평택에 반도체공장이 계속 들어서는 것에 대해 그리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현재 경기 화성·기흥 캠퍼스에서 일하는 메모리사업부, 파운드리사업부 소속 일부 직원들은 내년부터 평택캠퍼스에 추가 투입될 예정이다. 화성캠퍼스 정문에서 차로 34km, 약 40분 정도 달려야 평택캠퍼스 정문에 도착한다. 대중교통으론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