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세계 최초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등록했다고 발표했지만 미국 등 서방 국가와 국제기구 등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러시아 백신이 3상 임상 시험을 거치지 않아 효과와 안정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11일(현지시간) 내셔널 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백신에 대한 효과 입증을 확실히 했는지에 대해 심각히 의문”이라며 “백신 제조는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은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도 6개 이상의 백신 후보를 갖고 있는 데다 사람들에게 해가 되고 효과가 없는 것을 제공할 가능성을 감수한다면 다음 주에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타릭 야사레비치 WHO 대변인은 “러시아 당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으며 백신에 대한 WHO의 사전 자격 인정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WHO는 백신과 의약품에 대한 엄격한 검토 및 평가 등 사전 자격 심사 절차를 마련했다”면서 “절차를 가속하는 것이 곧 안전성과 타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를 공식 등록했다고 밝혔다. 안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러시아를 믿는다”며 백신 제공 제안을 수용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날 밤 TV연설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 무상 공급을 제안했다”며 “백신이 도착하면 내가 첫 시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브라질 남부 파라나주 정부는 러시아 백신의 브라질 내 생산을 위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제약사 모더나와 15억달러(약 1조7775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모더나와 1억회분에 달하는 백신 후보물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모더나의 백신 가격은 1회분에 15달러로 책정됐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사노피, 화이자, 노바백스, 존슨앤드존스, 아스트라제네카 등과 공급 계약을 맺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