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성범죄 처벌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성범죄 처벌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강간죄,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12일 강간의 정의를 확장함으로써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비동의 강간죄 법안'(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대한민국 최초 여성 국회부의장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12명이 공동 발의했다.

비동의 강간죄 법안은 정의당의 21대 국회 5대 우선 입법 과제 중 하나다. 법안의 주요 골자는 강간의 정의를 폭행과 협박으로 한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위계와 위력'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현행법(형법 297조 등)에서는 폭행·협박의 정도가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상황에 해당한 경우에 한해 강간죄를 성립해왔다.

이 같은 강간죄에 대한 협의적 규정은 가해자들이 법망을 손쉽게 탈출하고 낮은 처벌을 받는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왔다.

비동의 강간죄 법안이 통과되면 폭행을 동반한 위협이 없더라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성행위라고 판단될 경우 강간죄 처벌이 가능해진다. 이어 위계와 위력을 통한 성범죄 처벌 범위도 확대된다. 현행 헌법으로는 업무상 관계로 한정된 위계와 위력을 통한 성범죄 처벌을 인정해왔는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위계 관계 인정 범위를 대폭 넓혀 의사와 환자 사이, 종교인과 신자 사이와 같은 경우에서 발생하는 성범죄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류 의원은 이날 오후 2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범죄 근절과 피해자 보호를 염원하는 많은 시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법안"이라며 개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대한민국 형법은 국민과 국가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라며 "범죄 처벌을 통해 보호해야 하는 법익은 '성적자기결정권'이며,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자율적이고 책임 있게 자신의 성적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일부"라고 말했다.

류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단순히 몇 가지 구성요건과 형량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성범죄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율하는 형법을 시대의 변화, 국제적 흐름에 맞추어 전면적으로 재정비하는 법률이라고 했다.

류 의원은 "형법 제32장의 제목은 지난 1995년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정되었으나 성범죄에 대한 국민적 인식의 변화,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의 다양한 형태의 성범죄가 출현함에 따라 '성적침해의 죄'로 변경하고 구체적 내용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개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발의된 개정안은 크게 세 가지의 내용을 담았다. '간음'이란 법문을 모두 '성교'로 바꾸는 조항과 강간죄를 태양에 따라 '상대방의 동의 없이', '폭행, 협박 또는 위계, 위력',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로 세분화하는 내용, 형량 상향 조정 조항 등을 포함했다.

전문가들은 비동의 강간죄 법안이 사회에 미칠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며 '상식적인 규범의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해당 법안의 악용 또는 부작용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입법 과정에서 더 명확한 구성요건을 도입하는 것에 집중해 논의를 이어가야한다고 조언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성범죄 처벌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성범죄 처벌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형법 하나의 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 간의 성적인 관계를 맺을 때 어떠한 태도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 일상의 기본을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면서 "이미 늦었지만 해당 법안이 이제라도 제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이어 "어떠한 성적행동에도 상대방의 동의를 전제해야 한다는 가장 상식적인 규범과 실천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나아가 적극적인 합의를 기본으로 하는 일상과 새로운 성문화를 만들어가는 기반이 될 것이라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김경숙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폭행'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는데, 실제 2019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소속 성폭력상담소의 상담 사례 조사 결과에서 보여주듯이 강간피해 상담 중 '폭행'이나 '협박'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약 71.4%가 된다"며 "이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강간 사건을 기존의 형법이 포섭하지 못하는 경우다. 실질적 의미가 큰 만큼 국회에서 반드시 입법이 이루어지길 고대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정안 반대 측에서 우려하는 악용 또는 부작용 소지를 줄이기 위한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여성 관련 변호 업무를 주로 진행해 왔다는 A 변호사는 "사실 국민의 법 감정만으로 보면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순수히 법률학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범죄의 구성요건을 어떻게 입증하고 증명할까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실제 상황에서 동의라는 부분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유죄를 입증할 검찰 사이 등에서 굉장히 많은 공방이 오갈 것"이라며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어느 한계까지 비동의 강간죄로 볼지는 조금 더 세밀하게 법 구성요건을 잡아야 할 것 같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비동의와 동의의 한계를 명확하게, 어떠한 행위가 있었을 때 동의로 볼 것인지, 어떤 경우에 비동의로 볼 것인지와 같은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잡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류 의원 또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입법 과정에서 많은 설득과 설명, 대화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구성요건 뿐만 아니라 '동의 없이'라는 단어에 대한 혼란을 낮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고 답변했다. 이어 "개정을 통해 법률 해석 같은 부분이 한층 더 구체화되도록 해 사회적 합의 또한 개정안의 의미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수현 한경닷컴 인턴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