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감독원이 '월급루팡' 되지 않으려면 [전형진의 복덕방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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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가시화…업무 범위 등 조정 필요
집값 잡히면 존재 의미 모호해질 수도
집값 잡히면 존재 의미 모호해질 수도
‘부동산판 금융감독원’의 출범이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검토’를 언급한 건 단순한 검토 이상의 의미를 갖죠. 장관들은 이제 논의를 시작하는 정도일 뿐이라고 애써 선을 긋고 있지만요. 왜 갑자기 논의를 시작하는 건지 우리는 다 알죠.
2000명 규모의 조직이 될 것이란 보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초로 제안한 세무사 개인의 의견일 뿐 확정된 건 아닙니다. 업무량을 보면 그만큼의 인력이 필요하단 이야기죠. 국토교통부 직원도 2000명은 안 됩니다.
사실 국토부엔 이미 비슷한 조직이 있습니다. 이번에 많이 언급된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이죠. 지난 2월 박선호 제1차관 직속 조직으로 신설됐습니다. 밑에는 조사총괄과가 있고요. 총괄과 직원들과 검찰, 경찰, 국세청,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조직의 직원들이 뭉친 게 바로 대응반입니다. 여기에 한국감정원 실거래상설조사팀과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신고센터가 지원 업무를 맡습니다.
이들이 하는 건 이상거래를 찾아내는 겁니다. 이미 관계기관 합동조사 결과를 몇 차례 발표했지만 세금탈루나 명의신탁 의심 사례를 찾아낸 뒤 각 기관에 통보하는 게 주업무입니다. 최근엔 인터넷 블로그나 유튜브 등의 표시광고 위반도 들여다보고 있죠. 만약 ‘부동산감독원’이 생긴다면 이 같은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동산 행정이 아닌 사실상의 사법처리기구로서 말이죠.
별도 조직이 신설되면 경찰의 광역수사대 같은 상설조사반이 생기는 셈입니다. 지휘체계가 일원화되는 만큼 조사는 쉬워지고 또 광범위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업무 범위를 어디까지 가져갈 수 있느냐겠죠. 부동산과 밀접한 세무 관련 분야는 어차피 나중에 국세청으로 이관해야 하는 문제들입니다. 의심 사례만 걸러낼 수 있을 뿐이죠. 자체 조사와 처벌을 한다면 자칫 ‘옥상옥’이 될 수 있습니다.
불법 행위를 강도 높게 조사하겠다는 의지는 알겠는데 사실 누구를 감독할 건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매매나 임대차거래의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중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말이죠. 아니면 전담 조직이 생기는 만큼 건설업계의 분양 관련 업무를 들여다 볼까요. 비위가 많은 재개발·재건축조합에 대한 개입도 염두에 둘 수 있게죠. 하지만 그렇다면 정말로 조직의 규모가 2000명은 돼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동산감독원 부산지사, 인천지사 같은 걸 또 만들어야 할 수도 있겠군요.
가장 가능성 높은 건 아무래도 기존 부동산불법행위대응반의 기능에 한국감정원의 시장관리 영역을 흡수하는 형태입니다. 한국감정원은 본업인 공시가격 산정 업무 외에도 부동산 시세 통계를 비롯해 인터넷 청약대행, 정비사업조합 공사비 검증 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실거래 상설조사도 진행하고요. 최근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허위매물 단속 기능도 추가됐죠. 기구의 모태인 감정평가와는 다른 업무들이죠. 그래서 이름도 ‘한국부동산원’으로 바꾸도록 법까지 개정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감독원이 생긴다면 업무 집중을 위해 이관하기 딱 좋은 일거리들이기도 하죠.
부동산감독원의 출발이 어찌 되든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조직인 만큼 초기엔 무조건 굵직한 실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적폐로 규정된 사례에 대한 다양한 공개처벌 사례가 나오겠죠. 그런데 지금까지 감시나 감독을 덜해서 부동산시장이 이렇게 폭주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명 강사들이 세무조사를 받고 칩거에 들어가거나 말 그대로 교란 세력들이 사법부의 판단을 받는 일은 여전히 많습니다. 물론 그런 일들을 용인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부가 시장 과열의 원인에 대한 정답을 내려둔 것 같아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의도한 대로 집값이 잡히는 경우입니다. 투기나 시장 교란 같은 것들은 집값 상승 국면에서나 생겨나는 단어들입니다. 집값이 떨어지도록 세제까지 동원하고 거래조차 꽁꽁 막은 상황인 만큼 정말 이대로 집값이 잡힌다면 그때 감독 기구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요. 얼마 되지 않는 실거래 데이터를 전수조사하는 ‘월급루팡’ 부동산경찰이어선 안 되겠죠. 근시안적 대안보단 면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2000명 규모의 조직이 될 것이란 보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초로 제안한 세무사 개인의 의견일 뿐 확정된 건 아닙니다. 업무량을 보면 그만큼의 인력이 필요하단 이야기죠. 국토교통부 직원도 2000명은 안 됩니다.
사실 국토부엔 이미 비슷한 조직이 있습니다. 이번에 많이 언급된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이죠. 지난 2월 박선호 제1차관 직속 조직으로 신설됐습니다. 밑에는 조사총괄과가 있고요. 총괄과 직원들과 검찰, 경찰, 국세청,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조직의 직원들이 뭉친 게 바로 대응반입니다. 여기에 한국감정원 실거래상설조사팀과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신고센터가 지원 업무를 맡습니다.
이들이 하는 건 이상거래를 찾아내는 겁니다. 이미 관계기관 합동조사 결과를 몇 차례 발표했지만 세금탈루나 명의신탁 의심 사례를 찾아낸 뒤 각 기관에 통보하는 게 주업무입니다. 최근엔 인터넷 블로그나 유튜브 등의 표시광고 위반도 들여다보고 있죠. 만약 ‘부동산감독원’이 생긴다면 이 같은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동산 행정이 아닌 사실상의 사법처리기구로서 말이죠.
별도 조직이 신설되면 경찰의 광역수사대 같은 상설조사반이 생기는 셈입니다. 지휘체계가 일원화되는 만큼 조사는 쉬워지고 또 광범위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업무 범위를 어디까지 가져갈 수 있느냐겠죠. 부동산과 밀접한 세무 관련 분야는 어차피 나중에 국세청으로 이관해야 하는 문제들입니다. 의심 사례만 걸러낼 수 있을 뿐이죠. 자체 조사와 처벌을 한다면 자칫 ‘옥상옥’이 될 수 있습니다.
불법 행위를 강도 높게 조사하겠다는 의지는 알겠는데 사실 누구를 감독할 건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매매나 임대차거래의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중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말이죠. 아니면 전담 조직이 생기는 만큼 건설업계의 분양 관련 업무를 들여다 볼까요. 비위가 많은 재개발·재건축조합에 대한 개입도 염두에 둘 수 있게죠. 하지만 그렇다면 정말로 조직의 규모가 2000명은 돼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동산감독원 부산지사, 인천지사 같은 걸 또 만들어야 할 수도 있겠군요.
가장 가능성 높은 건 아무래도 기존 부동산불법행위대응반의 기능에 한국감정원의 시장관리 영역을 흡수하는 형태입니다. 한국감정원은 본업인 공시가격 산정 업무 외에도 부동산 시세 통계를 비롯해 인터넷 청약대행, 정비사업조합 공사비 검증 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실거래 상설조사도 진행하고요. 최근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허위매물 단속 기능도 추가됐죠. 기구의 모태인 감정평가와는 다른 업무들이죠. 그래서 이름도 ‘한국부동산원’으로 바꾸도록 법까지 개정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감독원이 생긴다면 업무 집중을 위해 이관하기 딱 좋은 일거리들이기도 하죠.
부동산감독원의 출발이 어찌 되든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조직인 만큼 초기엔 무조건 굵직한 실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적폐로 규정된 사례에 대한 다양한 공개처벌 사례가 나오겠죠. 그런데 지금까지 감시나 감독을 덜해서 부동산시장이 이렇게 폭주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명 강사들이 세무조사를 받고 칩거에 들어가거나 말 그대로 교란 세력들이 사법부의 판단을 받는 일은 여전히 많습니다. 물론 그런 일들을 용인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부가 시장 과열의 원인에 대한 정답을 내려둔 것 같아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의도한 대로 집값이 잡히는 경우입니다. 투기나 시장 교란 같은 것들은 집값 상승 국면에서나 생겨나는 단어들입니다. 집값이 떨어지도록 세제까지 동원하고 거래조차 꽁꽁 막은 상황인 만큼 정말 이대로 집값이 잡힌다면 그때 감독 기구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요. 얼마 되지 않는 실거래 데이터를 전수조사하는 ‘월급루팡’ 부동산경찰이어선 안 되겠죠. 근시안적 대안보단 면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