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9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산업구조심의회 총회’를 열었다. 일본이 한국에 전략물자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일본 산업계, 정치계, 학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한데 모였다. 이들이 일본 경제를 분석해 내린 결론은 세 가지였다. 주요 7개국(G7)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 각자도생 시대가 열렸지만 일본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다는 것. 일본에 남은 카드는 하나. 바로 소재·부품·장비(소부장)라는 것이었다.

문준선 산업통상자원부 서기관이 저서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에서 소개한 사실이다. 경제산업성은 좀처럼 쓰지 않는 ‘패배’라는 단어를 사용해 위기를 강조했다. 저자는 “일본이 지난해 수출을 규제한 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다”며 “일본은 냉정하게 자기 평가를 하고 재도약할 의지를 드러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일본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린 수출 규제가 오히려 한국 제조업과 경제에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며 “한·일 경제전쟁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승패는 소부장 경쟁력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일본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 원천을 해부하고, 한국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고자 했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에너지연구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일본 소부장 기업 자료를 긁어모아 460여 개 업체를 분석했다.

저자는 일본이 소부장 강국이 된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전후 일본 경제의 역동성, 우주 개발 등 거대 과학 프로젝트 참여, 틈새시장을 노린 중소기업들의 혁신이다. 그는 일본 소부장 기업들의 성패를 되짚어 경영전략, 마케팅, 기술 개발 등 분야별로 시사점을 엮어 11가지 교훈을 추린 뒤 소개했다. “도요타는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부품 공급처를 동남아시아로 옮겨 재도약했다.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면 발생한 충격을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한국 대기업은 다변화를, 중소기업은 자립할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설파한다. 일본 경제를 우리의 성과와 실패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일본보다 낫거나 부족한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며 “질문을 바꿔 일본 경제가 겪은 부침을 분석하고 의미를 찾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