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집값 상승세 진정 양상’에 대한 주장을 한 데 대해 시장 현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동작대교에서 바라본 한강변 강남 아파트 단지 모습. 김범준기자 bjk07@hankyung.com
정부가 최근 ‘집값 상승세 진정 양상’에 대한 주장을 한 데 대해 시장 현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동작대교에서 바라본 한강변 강남 아파트 단지 모습. 김범준기자 bjk07@hankyung.com
"부동산시장이 안정됐다고요? 집을 사고 싶어도 매물이 없던데요. 어렵게 계약 직전 단계까지 가도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두거나 가격을 5000만~1억원씩 올리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동작구에서 매매할 집을 구하던 박 모씨(37)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결국 당분간 집 사는 걸 보류했다. 박 씨는 “한 집주인에게서 주변에서 앞으로 집값이 오를건데 왜 지금 파냐고 해 매물을 거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부동산시장이 상승기라는 전망이 많은데 집주인 입장에선 굳이 높은 양도세를 물고 집을 팔기 보다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집값 상승세 진정 양상’에 대한 주장을 한 데 대해 시장 현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에선 매물 잠김 상태가 심해지고 알짜매물은 ‘부르는 게 값’인 매도 우위 시장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거래량이 많지 않아 정부의 매매가격 통계에 호가 증가세가 잡히지 않는 착시가 생긴다고 지적하고 있다.

"부동산시장 안정 추세라고?…글쎄"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과열 현상을 빚던 주택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대책 효과가 본격화되면 이런 추세가 더욱 가속화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의 근거는 통계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감정원의 서울 주택가격 상승률(매매가격지수 변동률·주간) 추세를 보면 최근 한 달 동안 0.09%에서 0.06%로, 다시 0.04%까지 낮아진 상황”이라며 “목요일(지난 13일) 감정원 발표에서 상승률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특히 강남 4구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주장처럼 실제 부동산시장은 안정되고 있을까. 시장에서는 매물 잠김 현상에 여전히 집값이 급등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1~2주 사이에도 종전 실거래가를 뛰어넘는 신고가 거래는 속속 등장하는 중이다.

서초구에선 서초동 '서초래미안' 전용면적 127㎡ 주택형이 지난주 6일 22억5000만원(3층)에 거래됐다. 작년 말 기록한 직전 최고가(19억5000만원·11층)보다 3억원이 오른 신고가였다. 인근 '서초교대e편한세상'도 전용 84㎡가 지난 5일 20억9000만원(12층)에 팔렸다. 지난달 최고가인 20억5000만원(8층)보다 4000만원 올랐다. 송파동 '삼성래미안' 전용 148㎡도 지난 6일 16억8000만원(21층)에 팔려 두달 만에 직전 최고가(15억4000만원·12층)를 넘어섰다.

서초동 K공인 대표는 "어제 하루 동안에만 집을 구하는 수요자들이 5~6명은 방문했다"며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 생각해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수요자들은 빨리 매수를 하려는 분위기 때문에 호가는 하루 걸러 하루 오르는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 통계 입맛대로 취사 선택" 비판

세종시 한솔동 아파트 단지 전경. /한경DB
세종시 한솔동 아파트 단지 전경. /한경DB
시장에서는 정부가 내세운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값은 0.20%의 변동률을 나타냈다. 주간 기준으로 보면 지난달 6일(7월 첫째주) 서울 주택가격 상승률은 0.11%였고, 나흘 뒤 7·10 부동산대책이 나왔다. 이후 13일에 0.09%, 20일에 0.06%를 기록했고, 27일과 지난 3일에는 2주 연속 0.04%에 머물렀다. 8·4 대책이 나온 후인 10일엔 상승폭이 더 줄어 0.02%를 기록했다.

감정원 통계로만 보면 집값이 안정세로 접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민간 통계를 분석해보면 결과는 다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폭은 작년 12월(1.08%) 이후 가장 높은 0.96%의 변동률을 기록했다. 가구당 평균 매매가격은 7월 말 기준으로 처음으로 10억원을 넘어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12·16 부동산 대책과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 영향 등으로 잠시 하락했다가 올해 5월 말 상승 반전한 이후 8월 현재까지 11주 연속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최근까지 서울 아파트값에 대한 통계도 차이가 난다. 한국감정원 통계로는 약 14%, KB국민은행 중윗값 통계로는 52%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감정원 시세가 KB보다 낮게 나오는 것은 조사 규모가 작고 상대적으로 시세에 더디게 반응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KB시세는 서울 아파트만 기준으로 6750개 표본을 갖고 있다. 같은 기준 감정원의 2.5배 수준이다. 조사 방식은 중개업소에서 온라인으로 직접 실거래가를 입력하면 그 값을 취합하고 별도 인터뷰를 통한 보완이 이뤄진다. 감정원은 월 1회로 정규직 조사 전문가가 집값을 조사하는데 실거래가를 우선으로 파악하고, 실거래가가 없으면 유사거래, 또는 협력 중개업소를 통한 가격 확인 등으로 조사를 진행한다.

특히 요즘처럼 주택 거래량이 많지 않을 경우 통계 왜곡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지난 6월 1만5599건에서 지난달 8926건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통상 호가 기준의 시세가 가장 높고 그다음이 KB, 그보다 낮은 게 감정원"이라면서 “민간통계 수치는 최근 호가를 잘 반영하는 데 반해 감정원 조사는 실거래가 적을 경우 집값 변동폭이 상대적으로 작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비인기 지역 나홀로 아파트까지 포함하고 감정원의 정성평가를 반영되는 조사 방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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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의 현실은 외면하고 원하는 통계치만 보고 입맛대로 해석해 시장을 전혀 모르는 듯한 평가가 나왔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다양한 통계치를 활용해 시장을 종합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정책 방향에 유리한 통계만 취사 선택해 발표하고 있다"며 "일례로 동향을 얘기할 때는 감정원 시세를 활용했다가 대출 규제를 할 때는 민간시세를 활용하는 등 때에 따라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만 이용하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