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도까지 치솟은 폭염 속에 참배행렬 200m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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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靖國)신사에 참배하러 가는 중이라고 밝힌 성(姓)이 '쓰지'인 39세 남성에게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 등 A급 전범 14명이 이 신사에 합사된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이렇게 반응했다.
그는 일본 중의원이 1953년 8월 가결한 '전쟁범죄에 의한 수형자의 사면에 관한 결의' 등 일련의 조치를 염두 두고 이런 주장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 한국이나 중국 등이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항의하는 것이 "내정 간섭"이라고 단언해 한없는 역사 인식의 차이를 실감하게 했다.
한 무리의 남성들이 "대동아전쟁은 성전(聖戰)이다", "아베 총리는 8월 15일에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하라", "헌법개정 자위군비" 등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부정하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모여 있는 것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대동아전쟁은 제국주의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미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패전 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국총사령부(GHQ)가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던 용어인데 한술 더 떠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욱일기를 앞세운 이들은 10여명 단위로 '하이덴'(拜殿) 앞에 몰려가 고개 숙여 참배했다.
정오 무렵이 되자 일본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전몰자 추도식'이 신사 경내에 설치된 스피커로 음성 중계됐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평소 혐한(嫌韓)시위를 주도한 것을 악명이 높은 단체 회장을 따라 15명 정도가 집단으로 참배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으로 세계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큰 고통을 안기고 종국에는 인류 사상 최초의 원폭을 당한 국가의 수도 복판에서 제국주의 시절을 미화하는 언동이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신사 측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약 1m 간격으로 표시한 대기 위치를 따라 참배객의 행렬은 200m가량 이어졌다.
2시간가량을 직사광선 아래 기다려 전범은 신으로 모시는 시설에 고개를 숙인 이들에게서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주변국에 대한 배려의 목소리를 찾기는 어려웠다.
조부가 전사했다고 밝힌 50대 회사원은 일본 총리와 일왕이 매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참배하러 오면 더는 뉴스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엉뚱한 주장을 했다.
한 여성(68세)은 "유족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 행복하게 사는 것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덕"이라고 이날 참배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여성은 각료나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라며 "왜 남의 나라가 참견을 하느냐"고 덧붙였다.
신사 측은 전쟁 박물관인 유슈칸(遊就館)에 이른바 '자살 특공대'가 탔던 '영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 일명 제로센)를 전시하고 "격투 성능과 항속력에서 세계 최강을 자랑했다"는 설명 문구를 달아 놓았다.
아베 정권이 연속 7년 넘게 이어진 가운데 일본 정치권과 시민 사회가 함께 우경화한 것을 상징하는 듯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