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가 출국 전 남편 남기협 씨(왼쪽)와 기념촬영을 했다.  박인비 제공
박인비가 출국 전 남편 남기협 씨(왼쪽)와 기념촬영을 했다. 박인비 제공
‘골프 여제’ 박인비(32)는 지난 주말 스코틀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는 20일 개막하는 여자골프 메이저대회 AIG위민스오픈(총상금 450만달러)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AIG위민스오픈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 3위 박성현(27) 등 상당수 톱랭커가 불참을 선언한 상황. 박인비는 이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 중 세계랭킹(12위)이 가장 높다. 출국 전 만난 그는 “어느 시점에서든 (LPGA투어에)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복귀) 날짜를 정해놓고 두 번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2015년 이후 5년 만에 이 대회 두 번째 우승을 노리는 그의 이번 도전은 조금 더 특별해졌다. 남편 남기협 씨(39)가 캐디 겸 스윙코치로 동행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대회에 둘이 ‘원(1)팀’으로 출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인비의 캐디를 오랫동안 봐주던 브래드 비처(호주)가 자가 격리 문제로 합류하지 못하면서 지난달 열린 국내 대회부터 남씨가 캐디백을 메고 있다. 박인비는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캐디백을 가벼운 것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남씨는 2011년 박인비의 스윙코치로 일하다가 연인으로 발전했고 2014년 결혼했다. 박인비를 ‘골든슬래머’로 띄워 올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획득도 남편의 외조가 컸다는 게 측근의 말이다.

박인비는 “전문 캐디인 브래드는 내가 플레이하면서 다른 것에 신경을 안 쓰게 해주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남편은 그런 면에선 조금 떨어질 수도 있지만, 코치였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더 많은 조언을 해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내게 ‘정말 결혼 잘했다’고 하는데 맞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행복하다”며 웃었다.

박인비는 평소 혼자 경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다. 자신있는 그린 위에선 캐디를 찾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남씨가 백을 멘 이후론 조금 달라졌다. 박인비는 “웬만한 퍼팅 라인은 내가 보고 판단하지만, 올 시즌엔 남편에게 많이 물어보고 있다”며 “브래드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묻는 것 같다. 왠지 신뢰감이 생긴다”며 미소지었다.

LPGA 통산 20승(메이저 7승)을 올린 그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4대 메이저대회 제패)에 이어 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내 ‘모든 것을 이뤘다’는 평을 듣는다. 굳이 꼽자면 올림픽 2연패 정도가 당면한 목표다. AIG위민스오픈에서 우승한다면 올림픽 대표 후보로 급부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솔직히 올림픽 생각은 크게 하지 않고 있다”며 “‘내년엔 정말 올림픽이 열릴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감수하고 AIG위민스오픈에 출전할 이유가 없다.

박인비 측근은 “투어 생활을 이젠 정말 ‘직업’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전했다. 회사원이 회사에 출근하듯 박인비도 현역에 있는 한 최대한 많은 대회에 출전해 팬들에게 경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AIG위민스오픈이 끝나면 박인비는 곧장 미국으로 건너가 LPGA투어 잔여 경기에 가능한 한 자주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그는 “불안정한 시국에 먼 타지로 가야 해 마음이 편하진 않지만 남편과 함께해 많이 의지가 된다”며 “안전하게, 또 좋은 성적으로 경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시즌을 잘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