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탑 뒤덮은 꽃비…"경이로운 연대·균형에 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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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갤러리, 서양화가 한담 초대전 '꽃비 내리는 풍경'
스페인 '인간탑 쌓기' 모티브로
꽃잎, 나비 등 채운 24점 출품
"인간의 경이로운 순간에 주목
이웃과의 관계·소통 강조했죠"
스페인 '인간탑 쌓기' 모티브로
꽃잎, 나비 등 채운 24점 출품
"인간의 경이로운 순간에 주목
이웃과의 관계·소통 강조했죠"
스페인 동북부 카탈루냐 지방의 연례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행사가 ‘카스텔(Castell)’이라는 인간탑 쌓기다. 2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며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카스텔은 카탈루냐어로 ‘성(城)’ ‘요새’라는 뜻. 수십 명부터 수백 명까지 한 팀을 이뤄 6~10층의 탑을 쌓는다.
카스텔의 낮은 층에는 건장한 남성이, 높은 층에는 어리고 가벼운 소년소녀가 배치되지만 인간탑을 지탱하는 기초 부분에는 남녀노소가 누구나 참여해 힘을 보탠다. 견고한 성채는 기초부터 성벽까지 빈틈없이 튼튼하다. 카스텔 또한 참가자 중 한 명이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무너지기 때문에 협력과 균형의 상징이다. 맨 꼭대기에 선 아이가 한쪽 팔을 들어 올려 탑의 완성을 선언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서양화가 한담(59·사진)은 이 카스텔을 화폭으로 가져왔다. 다른 사람의 어깨를 밟고 탑을 쌓아 올린 사람들, 서로 어깨를 마주잡고 압력을 분산시키며 위아래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정적인 동시에 동적이다. 한 작가가 올해 들어 작업한 ‘인간탑(Human Tower)’ 시리즈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한 작가의 인간탑 연작을 선보이는 초대전 ‘꽃비 내리는 풍경’이 17일 개막했다. 크고 작은 인간탑 시리즈 23점과 ‘나비’ 1점 등 모두 24점을 내놓았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탑은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지만 두드러지거나 압도적이지 않다. 꽃비가 내리듯 화폭을 빼곡히 수놓은 꽃잎, 눈송이, 하얀 점 등에 가려져 자세히 들여다봐야 제대로 보일 정도다.
그의 작업은 2개의 층으로 구성된다. 먼저 캔버스에 금박이나 은박을 접착제로 붙여서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그리는 인간탑이다. 캔버스보다 금박·은박 위에 색을 입히는 게 더 어렵지만 전체적인 효과를 위해 선택한 작업이다. 그는 화면에 들어갈 사람들의 뼈대, 근육, 색깔, 명도와 채도, 색채 간의 관계 등을 미리 촘촘히 구상한 상태에서 작업한다.
인간탑을 쌓은 뒤엔 그 위에 꽃잎, 눈송이, 새싹, 나비 등으로 점과 패턴을 입히는 추상 작업이 이어진다. 수많은 점을 화면에 그려 넣는 과정은 구도행에 가깝다. 점을 찍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완전한 몰입 상태에 빠진다는 것. 한 작가는 한성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쾰른대에서 6년간 유학하며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했다. 1992년 귀국 후에는 한성대, 목원대, 김천대,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강의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2001년에는 갤러리 고도를 설립, 국내 유망 작가를 발굴해 해외에 소개하는 ‘미술한류’에 앞장섰다.
독일의 판화 거장 캐테 콜비츠(1867~1945), 대표작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귄터 그라스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라스는 뒤셀도르프미술대와 베를린국립예술대에서 그래픽과 조각을 전공한 미술가이기도 했다. 콜비츠와 그라스의 컬렉터이기도 한 그는 그라스의 작품만 8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한씨는 17년 동안 운영했던 갤러리를 역시 미술을 전공한 부인 이율리아 씨에게 맡기고 전업 작가로 돌아왔다. 갤러리 일이 많아지면서 5년가량 작업을 쉬었던 게 계기가 됐다. 그는 “작업을 더 미루면 체력이 떨어져서 못하게 될 것 같았다”며 “9회말 투아웃에 타석에 선 심정”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오늘 제작하는 이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함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 12~13시간씩 작업에 몰두하는 이유다. 인간탑 시리즈는 작업의 특성상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도 올해에만 70여 점을 완성했다. 한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인간의 가장 경이로운 순간에 주목한다. ‘아이’ ‘굿모닝(Good Morning)’ ‘기도하는 아이’ ‘인간탑’으로 이어지는 근년의 작품들이 모두 그렇다. 작가로서 내면적 몰입보다 이웃과의 관계와 소통이 중요하다는 그는 인간탑 연작을 통해 사람 간의 연대와 협동, 균형을 강조한다.
한 작가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맡은 일과 역할의 가치를 인식하고 그에 충실할 때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탑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인간탑을 뒤덮고 있는 꽃비는 그렇게 구현된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찬탄이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카스텔의 낮은 층에는 건장한 남성이, 높은 층에는 어리고 가벼운 소년소녀가 배치되지만 인간탑을 지탱하는 기초 부분에는 남녀노소가 누구나 참여해 힘을 보탠다. 견고한 성채는 기초부터 성벽까지 빈틈없이 튼튼하다. 카스텔 또한 참가자 중 한 명이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무너지기 때문에 협력과 균형의 상징이다. 맨 꼭대기에 선 아이가 한쪽 팔을 들어 올려 탑의 완성을 선언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서양화가 한담(59·사진)은 이 카스텔을 화폭으로 가져왔다. 다른 사람의 어깨를 밟고 탑을 쌓아 올린 사람들, 서로 어깨를 마주잡고 압력을 분산시키며 위아래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정적인 동시에 동적이다. 한 작가가 올해 들어 작업한 ‘인간탑(Human Tower)’ 시리즈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한 작가의 인간탑 연작을 선보이는 초대전 ‘꽃비 내리는 풍경’이 17일 개막했다. 크고 작은 인간탑 시리즈 23점과 ‘나비’ 1점 등 모두 24점을 내놓았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탑은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지만 두드러지거나 압도적이지 않다. 꽃비가 내리듯 화폭을 빼곡히 수놓은 꽃잎, 눈송이, 하얀 점 등에 가려져 자세히 들여다봐야 제대로 보일 정도다.
그의 작업은 2개의 층으로 구성된다. 먼저 캔버스에 금박이나 은박을 접착제로 붙여서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그리는 인간탑이다. 캔버스보다 금박·은박 위에 색을 입히는 게 더 어렵지만 전체적인 효과를 위해 선택한 작업이다. 그는 화면에 들어갈 사람들의 뼈대, 근육, 색깔, 명도와 채도, 색채 간의 관계 등을 미리 촘촘히 구상한 상태에서 작업한다.
인간탑을 쌓은 뒤엔 그 위에 꽃잎, 눈송이, 새싹, 나비 등으로 점과 패턴을 입히는 추상 작업이 이어진다. 수많은 점을 화면에 그려 넣는 과정은 구도행에 가깝다. 점을 찍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완전한 몰입 상태에 빠진다는 것. 한 작가는 한성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쾰른대에서 6년간 유학하며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했다. 1992년 귀국 후에는 한성대, 목원대, 김천대,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강의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2001년에는 갤러리 고도를 설립, 국내 유망 작가를 발굴해 해외에 소개하는 ‘미술한류’에 앞장섰다.
독일의 판화 거장 캐테 콜비츠(1867~1945), 대표작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귄터 그라스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라스는 뒤셀도르프미술대와 베를린국립예술대에서 그래픽과 조각을 전공한 미술가이기도 했다. 콜비츠와 그라스의 컬렉터이기도 한 그는 그라스의 작품만 8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한씨는 17년 동안 운영했던 갤러리를 역시 미술을 전공한 부인 이율리아 씨에게 맡기고 전업 작가로 돌아왔다. 갤러리 일이 많아지면서 5년가량 작업을 쉬었던 게 계기가 됐다. 그는 “작업을 더 미루면 체력이 떨어져서 못하게 될 것 같았다”며 “9회말 투아웃에 타석에 선 심정”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오늘 제작하는 이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함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 12~13시간씩 작업에 몰두하는 이유다. 인간탑 시리즈는 작업의 특성상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도 올해에만 70여 점을 완성했다. 한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인간의 가장 경이로운 순간에 주목한다. ‘아이’ ‘굿모닝(Good Morning)’ ‘기도하는 아이’ ‘인간탑’으로 이어지는 근년의 작품들이 모두 그렇다. 작가로서 내면적 몰입보다 이웃과의 관계와 소통이 중요하다는 그는 인간탑 연작을 통해 사람 간의 연대와 협동, 균형을 강조한다.
한 작가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맡은 일과 역할의 가치를 인식하고 그에 충실할 때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탑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인간탑을 뒤덮고 있는 꽃비는 그렇게 구현된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찬탄이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