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車 회사 구상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계획 흐지부지"
재추진 불씨는 여전히 남아
伊 FCA·佛 PSA는 합병 발표
몸집 불려 코로나 사태 극복 나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 자동차 시장이 자율주행 전기자동차(EV) 중심으로 바뀌면서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가 작년 말 닛산과 혼다에 합병을 제안했다고 17일 보도했다. 일본 2~3위 자동차업체를 합쳐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려는 계획은 보호무역 강화를 주장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참모진의 구상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참모진은 지난해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회장이 체포된 이후 르노와 닛산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제휴 관계가 붕괴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닛산과 혼다는 일본 정부의 제안을 거부했고 때마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합병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일본 정부가 재차 닛산과 혼다의 합병을 추진할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최근 세계 자동차 업황을 미뤄볼 때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세계 자동차업계는 경쟁사와의 합병 또는 제휴를 통해 위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15일 글로벌 8~9위 자동차업체인 이탈리아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 푸조시트로엥(PSA)은 회사를 합쳐 ‘스텔란티스’라는 거대 자동차 회사를 세운다고 발표했다.
두 회사가 합치면 혼다를 누르고 올 상반기 판매량 262만 대로 세계 6위 자동차 회사가 된다. 세계 2위와 7위 업체인 폭스바겐과 포드도 지난해 말 글로벌 시장에서 제휴하기로 합의했다.
반면 일본은 8개의 대형 자동차업체가 난립해 복잡한 지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쓰다, 스바루, 스즈키, 다이하쓰는 도요타와 지분을 교차 보유하고 있다. 닛산은 프랑스 르노 및 미쓰비시자동차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혼다는 일본 대형 자동차 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자본 제휴 관계가 없다. 이 때문에 최근 수년간 다른 회사와의 합병과 제휴를 진지하게 검토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닛산이 르노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혼다와 합병하면 단숨에 도요타, 폭스바겐에 맞먹는 대형 자동차업체로 발돋움한다.
일본 자동차 회사를 감독하는 경제산업성은 닛산과 혼다의 합병에 관여한 사실을 부인했다. 자동차업계에서도 두 회사의 합병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닛산의 전 경영진은 “닛산과 혼다의 합병은 자동차업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혼다는 닛산과 르노의 복잡한 자본 제휴 관계를 걸림돌로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혼다 특유의 디자인이 닛산의 생산 플랫폼과 공존하기 어려운 점도 장애물로 지적된다. 두 회사의 생산 플랫폼을 통합할 수 없으면 비용 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합병의 명분이 사라진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