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약속일 때 술을 마시나, 커피를 마시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만으로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조금은 드러난다. 카페인(caffeine)은 의미 그대로 커피에 들어 있는 성분인데, 중추신경계를 자극하고 이뇨 작용을 촉진한다. 커피를 마시면 각성하고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밀린 공부를 하거나 업무 회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유도 각성하고 집중하기 위해서다. 모닝커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술은 정반대의 기능을 한다. 술을 마시면 잠이 오고, 긴장이 풀리고, 생각지 않은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주사와 술주정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성에 의해 통제되던 사고와 말들이 술을 빌미로 튀어나오곤 한다. 커피는 낮에, 술은 밤에 마신다. 커피가 이성, 술이 감성과 연관되는 이유도 여기서 멀지 않다.

은희경의 소설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에 등장하는 남녀는 처음 만나 연인이 될 땐 술을 마시고, 헤어질 땐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독일 인문학자 볼프강 쉬벨부시가 쓴 《기호품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이런 용도 차이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커피는 17세기 말 유럽에 수입돼 위대한 각성제로 환영받았다. 커피는 이성적인 사람이 마시는 음료의 상징이 됐고, 술은 게으르거나 무능력한 사람의 음료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커피가 합리성, 냉정함, 개인주의라면 알코올은 노동자 계층의 집단적 힘과 단결력이었다. 계층적으로도 주로 상류계층이 카페인이 함유된 홍차와 커피를 즐겼다면 노동자 계층은 알코올, 술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웰빙이 휩쓴 21세기 건강학 입장에서 보자면 술이든 커피든 적당량이 권장된다. 그런데, 그러면서 점차 술에 더 많은 위계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술의 등급과 위계가 공고해지고 커피가 노동자의 음료로 대중화됐다. 와인과 위스키가 상류계층의 기호품이라면 커피는 정신노동자, 육체노동자를 가릴 것 없이 노동의 빛이 돼버렸다. 점심 이후 막걸리 새참, 담배참은 사라지고 커피가 피로 해소에 동원된다. 서울 여의도, 광화문과 같은 노동집약적 공간의 점심시간, 그 많은 커피숍에 앉을 자리가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카페문화 발상지인 유럽에서야 커피 한 잔을 두고 몇 시간씩 담소한다지만 한국에서 카페는 일하는 공간이다. 직장인의 회의 공간이기도 하고 취업준비생의 공부 공간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질 만큼, 한국에서 커피는 이제 각성을 넘어선 노동을 위한 음료다.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자 마시는 술이 진정한 여가로 여겨진다. 더 바쁘고 빨라진 세상에서 담소야말로 가장 귀한 사치품이자 기호품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