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의 데스크 칼럼] 투기란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달까지 나온 22번의 부동산 대책은 실패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나온 대책들은 부동산 시장의 불안만 키웠다. 15억원 넘는 아파트를 살 때 대출을 금지해도(12·16 대책), 전세자금을 활용한 주택 구입을 막아도(6·17 대책), 다주택자 등에 대한 세금 중과 방침을 발표해도(7·10 대책) 소용없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세종의 집값은 치솟았다. 집 없는 사람들, 특히 젊은 층은 좌절하고 있다. 집을 한 채 가진 사람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임대사업자들은 정부의 조변석개(朝變夕改)에 분노하고 있다.

부동산 불안은 복합요인 때문

23번째로 이달 나온 ‘8·4 대책’에도 이미 실패의 낙인이 찍혔다. 서울 도심에 공공재건축을 통해 아파트 공급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헛된 바람이었다. 35층에서 50층으로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이익의 90% 이상을 정부가 가져가겠다고 한 결과다. 공공 고밀도 재건축에 참여하겠다는 조합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지경이다. 지난달 말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으로 인해 전세는 씨가 말랐고 세입자들은 값비싼 월세로 내몰리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진 것은 복합 요인 때문이란 게 대다수 경제학자의 일치된 분석이다. 우선 주택 수요가 늘고 있다. 인구는 증가하지 않지만 1인가구는 늘고 있다. 여기에 걸맞은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 소득이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06년 2만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2017년 3만달러도 돌파했다. 괜찮은 주택에 살고 싶은 욕구가 커져 중고가 아파트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저금리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코로나 시대 급격히 늘어난 시중 유동성이 자산시장에 일부 흘러들면서 주식뿐 아니라 주택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복합 요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투기’와 ‘투기세력’만을 부동산 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몰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상황은 복잡한데 부동산 투기꾼만 잡겠다고 하니 백약이 무효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 구분 안되는 투기꾼 탓만

더 큰 문제는 투기꾼이란 게 모호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점이다. 세계적 대가들도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둘 다 수익을 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이 투기꾼이라는 말을 남겼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미래의 수익 전망을 바탕으로 자산을 매수하면 투자자, 심리 변화를 예측해 자산을 사면 투기꾼이라고 했다. 워런 버핏은 자산을 산 뒤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으면 투자, 잠을 못 이루면 투기라고 했다.

모두 심리적 측면을 얘기했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아파트 수요가 더 우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향후 5년간 30%의 수익이 기대된다는 생각에 아파트를 사면 투자자인가. 무주택 가구가 집을 한 채 사면서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좋겠다고 기대한다면 이는 투기꾼인가. 집을 두 채 사면서 임대사업을 해 은행 예금금리보다 약간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한다면 역시 투기꾼인가.

누구도 자신있게 얘기하기 힘들다. 《금융투기의 역사》를 쓴 에드워드 챈슬러가 투자와 투기의 심리적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정부 자체도 제대로 된 구분을 하지 못한다. 2주택 이상은 투기꾼이고, 전세를 낀 사람은 갭 투자자라고 하는 곳이 정부다. 이런 엉터리 진단으론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을 내놓기 힘들다.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