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일제의 특별한 식민지 포항'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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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이 20일 <일제의 특별한 식민지 포항>(출판사 글항아리)을 내놓았다. 경제전문가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전략을 포항의 근대화 과정으로 해부한 일본 서적을 번역하고 세밀한 주석을 달아 향토사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김 부국장은 “미래의 지역경제, 지속가능한 지역경제라는 화두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그 지역이 걸어온 발자취, 그지역의 정체성과 기질 등을 제대로 읽어야만 실효적인 정책방안을 마련할수있다는 생각에서 포항의 과거와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되집어봤다”고 말했다.
김 부국장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경제, 문화, 사회를 고찰한 많은 연구와 서적 대부분은 전국을 대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특정 지방, 즉 포항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오늘날 고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숱한 향토 사료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자료가 제대로 축적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6·25전쟁으로 유실된 데다 이후 압축 성장기의 도시 개발 과정에서 향토사가 소홀히 취급된 탓이다. 포항시는 그중에서도 더욱 심한 편이어서 대구나 부산과 달리 6・25전쟁 당시 도심지 자체가 거의 초토화됐다. 그렇기에 운 좋게 남겨졌거나 우연히 발견된 과거의 흔적은 더없이 소중하다. 김 부국장은 “비록 그것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지라도 실질적인 내용은 우리 선조의 피와 땀으로 이룬 것이기에 지역학의 관점에서는 남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구한말 당시 동부 해안가의 한적한 어촌 마을이던 포항동(浦項洞)이 면(面))으로, 또 읍(邑)으로 성장한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동시에 그 시기 한반도 곳곳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을 망라하고 있다. 역사·설화·산업·사회단체·문학·언론·의료·유흥·관광 등의 분야별로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는 지방 종합지다. 다른 지방 도시들도 포항과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책은 당대사를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전국구’급 향토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의 전반부를 이루는 『포항지浦項誌』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신중을 기했다. 우선 원문을 있는 그대로 옮기기만 하는 방식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포항지』를 쓴 두 저자는 당시 식민정책의 최전선에서 조선총독부 정책을 대변하는 일본인 기자였고, 그러한 관점과 논리가 책 안에 교묘하게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의 정책 변화에는 충실한 태도를 보이면서 조선인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는 간략히 다루거나 무시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일찌감치 식민사업에 뛰어든 일본인들이 ‘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한반도 동쪽 영일만의 어촌을 거점으로 부를 축적시켜 나가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인 1935년에 간행된 『포항지』는 일제의 식민정책 성과를 과시하는 수단이자 포항 지역에 정착한 일본인들의 성공담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서는 원문에 담긴 의도를 밝힘으로써 그들의 왜곡된 시각과 사고를 드러내고, 그들이 생략하거나 누락한 행간을 메울 수 있는 자료를 최대한 조사하여 해설과 주석으로 덧붙였다. 이 책 후반부에 『포항지』 발간을 전후한 사료와 광복 직전의 창씨개명과 징용, 광복 직후 일본인의 철수와 혼란기 포항의 모습까지 또 다른 포항의 발자취로 담은 것도 그 때문이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연표 작성으로 보완했다. 이로써 일반인은 물론 과거 시대상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오해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게끔 객관화했다. 현대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각 지역의 역사적 흔적들이 큰 고민 없이 파괴되거나 훼손된 상황에서 그나마 과거 이 땅에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선조들은 어떠한 시대현실을 통과했는지 등의 증언을 지방의 향토사학 연구자들 또는 지역주민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의 제1부는 다나카 마사노스케(田中正之助)와 가노 야스마사(加納安正)가 공저한 『포항지』를 주석과 함께 번역한 주해서로 구성했고, 제2부는 『포항지』 발간 전후의 포항에 관한 사료들을 모아 정리했다. 『포항지』는 당시 포항읍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므로 현 포항시 행정구역에 속한 영일군에 대한 정보가 많이 누락돼 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장별로 소개가 미흡한 부분은 1936년 발간된 『경북대감』(쓰지 스테조(逵捨藏) 편저)의 자료를 추가해 보완했다.
제2부에서는 1940년대 초의 창씨개명, 광복 이후 일본인의 철수, 1949년 포항시 승격 시점까지의 관련 자료를 담았다. 다만 부록의 연표 범위는 휴전이 조인된 시기까지로 잡았다. 이는 6·25전쟁으로 포항 시가지가 거의 초토화돼 휴전 이후 재건되었기 때문이다.
『포항지』 원문에 없는 내용(사진 포함)은 ‘*’ 표시와 함께 색을 달리하여 구분했다. 원문 자체의 오류는 바로잡은 후 주석으로 설명을 붙였다. 존칭과 호칭은 대부분 생략했다. 가독성을 위해 내용의 중요도에 따라 편집의 변화를 꾀했다. 『포항지』 원문에는 본문으로 다루었으나 그 내용이 부수적인 부분은 구성을 달리했다.
일제가 조선인의 평균 체격을 측정하기 위해 남녀별로 모아놓고 찍은 사진, 1920년대 포항 나카초(仲町) 설경, 포항의 발전상과 변화를 한 눈에 보여주는 지도, 포항 구도심지의 초기 형성을 알 수 있는 지도, 1931년 2월 포항역에서 청어를 출하하는 광경, 1910년대 헌병출장소로 사용된 영일현청 사진 등 희귀한 사진 자료도 많이 담고 있다.
이 책은 철저한 내용 검증을 통한 향토사 연구의 모범적 전형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대의 여러 자료를 통해 『포항지』의 내용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 가능성을 포착하기도 했다. 우선 1930년대 중반 일본이 러일전쟁과 만주사변에서 죽은 일본군을 추모하는 (또한 죽어서도 일왕에게 충성하겠다는 전사자의 다짐을 드러내는 의미에서) 전국 각지에 세운 충혼비가 묘한 용도로 재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그 재활용처는 다름 아닌 6·25전쟁에 참전한 미 해병 제1비행단 전몰 용사를 기리는 충령비다.
또 다른 사실은 포항의 모갈산(수도산)에 남아 있는 저수조에 새겨진 휘호에 관한 것이다. ‘수덕무강(水德無疆)’이라는 휘호 옆에 새긴 서명은 현재 훼손되어 있지만, 조사 결과 그 서명의 주인은 일제강점기 당시 총독으로 활동했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일 가능성이 있다. 이 또한 향토사 연구의 자그마한 성과라 자부한다.
선조의 발자취가 담긴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으면서, 한일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눈앞에 걸리는 문제를 하나씩 치우는 식은 능사가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과연 어떠한 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 남아 있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작업의 결과는 후손들이 올바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하는 교재로 활용되어, 역사의 진실과 현실을 함께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포항지에는 일본인 저자들이 사실을 왜곡했거나 의도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치부하거나 생략해버리는 내용도 많이 나온다. 이번 책은 이런 부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자세한 주석을 통해 그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데 가장 큰 특징이 있다. 본문 49쪽을 보면 “조선 시대에 들어 태종왕 때 연일에 진(鎭)을 설치해 성을 짓고 병마의 구비도 완비했으나, 이것은 그다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아니다”라고 쓰고 있는데 편역자 김진홍은 주석을 달아 “특기할 만한 사실이 아니라고 폄하하고 있으나, 이것이야말로 포항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록이다. 이곳에 설치한 연일진은 말하자면 해병사단 안에 배치한 육군이다. 진은 군사적 요충지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에 이미 영일만 또는 연일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본문 162쪽에서 3·1운동을 “만세 소란”이라고 반복적으로 지칭한 것에 대해서도 “3.1 만세운동을 ‘만세 소란’이라고 표현한 데서 일본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영일군 포항읍에서 송문수宋文壽, 최경성崔景成 등의 주도로 독립만세 운동이 있었으며 주동자 5명이 피검되었다는 기록이 있다.(『독립운동사』 3, 국가보훈처 442쪽) 『포항지』는 포항에 이러한 사태가 없었음을 강변하기 위해 고의로 누락시킨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지적했다.
김진홍은 196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는 강릉에서 나왔고,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에서 ‘남북통일 시 재정 통합 방안’을 주제로 연구했다. 한국은행 조사국에서 아시아 지역 국제경제를 담당하다 현재는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9년 이후 「경북 동해안의 저출산·고령화 현황과 향후 대처 방안」 「경주 지역 관광 활성화 방안」 「포항시의 일본 기업 유치 전략」 「일본 대지진의 지역 경제에 대한 영향과 시사점」 「영일만항의 활성화 방안」 「포항 철강클러스터의 구조적 문제점 진단」 「경북 동해안 지역 글로벌 발전 방향」 「경북(포항) 지역의 티타늄 산업 육성 전략」 「포항의 가속기클러스터사업 추진 현황과 향후 과제」 「포항 지진의 경제적 영향 추계 및 정책적 시사점」 등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최근 포항이라는 지역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포항의 근대 도시 발전, 역사, 문화, 산업 등을 연구하는 ‘포항지역학연구회’에 몸담으면서 6·25전쟁 당시 포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 기록들을 섭렵해 『(포항지역학연구총서3) 포항 6·25』(공저)를 묶어내기도 했다.
동양의 도자기와 차 문화 등을 오래 연구해 2001년 제1회 세계도자엑스포 국제심포지엄의 기조강연 ‘임진왜란 당시 도공의 도일 배경과 그들의 선택’을 맡았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대학에서 ‘한·중·일의 차 문화와 도자기’를 강의했다. 도예평론가로 다양한 매체에 평론을 발표했다. 그 외에 옮긴 책으로 『숫자의 이면을 귀신같이 읽는 힘, 통계센스』 등이 있다.
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
김 부국장은 “미래의 지역경제, 지속가능한 지역경제라는 화두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그 지역이 걸어온 발자취, 그지역의 정체성과 기질 등을 제대로 읽어야만 실효적인 정책방안을 마련할수있다는 생각에서 포항의 과거와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되집어봤다”고 말했다.
김 부국장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경제, 문화, 사회를 고찰한 많은 연구와 서적 대부분은 전국을 대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특정 지방, 즉 포항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오늘날 고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숱한 향토 사료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자료가 제대로 축적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6·25전쟁으로 유실된 데다 이후 압축 성장기의 도시 개발 과정에서 향토사가 소홀히 취급된 탓이다. 포항시는 그중에서도 더욱 심한 편이어서 대구나 부산과 달리 6・25전쟁 당시 도심지 자체가 거의 초토화됐다. 그렇기에 운 좋게 남겨졌거나 우연히 발견된 과거의 흔적은 더없이 소중하다. 김 부국장은 “비록 그것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지라도 실질적인 내용은 우리 선조의 피와 땀으로 이룬 것이기에 지역학의 관점에서는 남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구한말 당시 동부 해안가의 한적한 어촌 마을이던 포항동(浦項洞)이 면(面))으로, 또 읍(邑)으로 성장한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동시에 그 시기 한반도 곳곳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을 망라하고 있다. 역사·설화·산업·사회단체·문학·언론·의료·유흥·관광 등의 분야별로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는 지방 종합지다. 다른 지방 도시들도 포항과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책은 당대사를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전국구’급 향토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의 전반부를 이루는 『포항지浦項誌』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신중을 기했다. 우선 원문을 있는 그대로 옮기기만 하는 방식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포항지』를 쓴 두 저자는 당시 식민정책의 최전선에서 조선총독부 정책을 대변하는 일본인 기자였고, 그러한 관점과 논리가 책 안에 교묘하게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의 정책 변화에는 충실한 태도를 보이면서 조선인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는 간략히 다루거나 무시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일찌감치 식민사업에 뛰어든 일본인들이 ‘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한반도 동쪽 영일만의 어촌을 거점으로 부를 축적시켜 나가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인 1935년에 간행된 『포항지』는 일제의 식민정책 성과를 과시하는 수단이자 포항 지역에 정착한 일본인들의 성공담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서는 원문에 담긴 의도를 밝힘으로써 그들의 왜곡된 시각과 사고를 드러내고, 그들이 생략하거나 누락한 행간을 메울 수 있는 자료를 최대한 조사하여 해설과 주석으로 덧붙였다. 이 책 후반부에 『포항지』 발간을 전후한 사료와 광복 직전의 창씨개명과 징용, 광복 직후 일본인의 철수와 혼란기 포항의 모습까지 또 다른 포항의 발자취로 담은 것도 그 때문이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연표 작성으로 보완했다. 이로써 일반인은 물론 과거 시대상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오해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게끔 객관화했다. 현대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각 지역의 역사적 흔적들이 큰 고민 없이 파괴되거나 훼손된 상황에서 그나마 과거 이 땅에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선조들은 어떠한 시대현실을 통과했는지 등의 증언을 지방의 향토사학 연구자들 또는 지역주민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의 제1부는 다나카 마사노스케(田中正之助)와 가노 야스마사(加納安正)가 공저한 『포항지』를 주석과 함께 번역한 주해서로 구성했고, 제2부는 『포항지』 발간 전후의 포항에 관한 사료들을 모아 정리했다. 『포항지』는 당시 포항읍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므로 현 포항시 행정구역에 속한 영일군에 대한 정보가 많이 누락돼 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장별로 소개가 미흡한 부분은 1936년 발간된 『경북대감』(쓰지 스테조(逵捨藏) 편저)의 자료를 추가해 보완했다.
제2부에서는 1940년대 초의 창씨개명, 광복 이후 일본인의 철수, 1949년 포항시 승격 시점까지의 관련 자료를 담았다. 다만 부록의 연표 범위는 휴전이 조인된 시기까지로 잡았다. 이는 6·25전쟁으로 포항 시가지가 거의 초토화돼 휴전 이후 재건되었기 때문이다.
『포항지』 원문에 없는 내용(사진 포함)은 ‘*’ 표시와 함께 색을 달리하여 구분했다. 원문 자체의 오류는 바로잡은 후 주석으로 설명을 붙였다. 존칭과 호칭은 대부분 생략했다. 가독성을 위해 내용의 중요도에 따라 편집의 변화를 꾀했다. 『포항지』 원문에는 본문으로 다루었으나 그 내용이 부수적인 부분은 구성을 달리했다.
일제가 조선인의 평균 체격을 측정하기 위해 남녀별로 모아놓고 찍은 사진, 1920년대 포항 나카초(仲町) 설경, 포항의 발전상과 변화를 한 눈에 보여주는 지도, 포항 구도심지의 초기 형성을 알 수 있는 지도, 1931년 2월 포항역에서 청어를 출하하는 광경, 1910년대 헌병출장소로 사용된 영일현청 사진 등 희귀한 사진 자료도 많이 담고 있다.
이 책은 철저한 내용 검증을 통한 향토사 연구의 모범적 전형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대의 여러 자료를 통해 『포항지』의 내용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 가능성을 포착하기도 했다. 우선 1930년대 중반 일본이 러일전쟁과 만주사변에서 죽은 일본군을 추모하는 (또한 죽어서도 일왕에게 충성하겠다는 전사자의 다짐을 드러내는 의미에서) 전국 각지에 세운 충혼비가 묘한 용도로 재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그 재활용처는 다름 아닌 6·25전쟁에 참전한 미 해병 제1비행단 전몰 용사를 기리는 충령비다.
또 다른 사실은 포항의 모갈산(수도산)에 남아 있는 저수조에 새겨진 휘호에 관한 것이다. ‘수덕무강(水德無疆)’이라는 휘호 옆에 새긴 서명은 현재 훼손되어 있지만, 조사 결과 그 서명의 주인은 일제강점기 당시 총독으로 활동했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일 가능성이 있다. 이 또한 향토사 연구의 자그마한 성과라 자부한다.
선조의 발자취가 담긴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으면서, 한일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눈앞에 걸리는 문제를 하나씩 치우는 식은 능사가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과연 어떠한 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 남아 있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작업의 결과는 후손들이 올바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하는 교재로 활용되어, 역사의 진실과 현실을 함께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포항지에는 일본인 저자들이 사실을 왜곡했거나 의도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치부하거나 생략해버리는 내용도 많이 나온다. 이번 책은 이런 부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자세한 주석을 통해 그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데 가장 큰 특징이 있다. 본문 49쪽을 보면 “조선 시대에 들어 태종왕 때 연일에 진(鎭)을 설치해 성을 짓고 병마의 구비도 완비했으나, 이것은 그다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아니다”라고 쓰고 있는데 편역자 김진홍은 주석을 달아 “특기할 만한 사실이 아니라고 폄하하고 있으나, 이것이야말로 포항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록이다. 이곳에 설치한 연일진은 말하자면 해병사단 안에 배치한 육군이다. 진은 군사적 요충지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에 이미 영일만 또는 연일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본문 162쪽에서 3·1운동을 “만세 소란”이라고 반복적으로 지칭한 것에 대해서도 “3.1 만세운동을 ‘만세 소란’이라고 표현한 데서 일본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영일군 포항읍에서 송문수宋文壽, 최경성崔景成 등의 주도로 독립만세 운동이 있었으며 주동자 5명이 피검되었다는 기록이 있다.(『독립운동사』 3, 국가보훈처 442쪽) 『포항지』는 포항에 이러한 사태가 없었음을 강변하기 위해 고의로 누락시킨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지적했다.
김진홍은 196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는 강릉에서 나왔고,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에서 ‘남북통일 시 재정 통합 방안’을 주제로 연구했다. 한국은행 조사국에서 아시아 지역 국제경제를 담당하다 현재는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9년 이후 「경북 동해안의 저출산·고령화 현황과 향후 대처 방안」 「경주 지역 관광 활성화 방안」 「포항시의 일본 기업 유치 전략」 「일본 대지진의 지역 경제에 대한 영향과 시사점」 「영일만항의 활성화 방안」 「포항 철강클러스터의 구조적 문제점 진단」 「경북 동해안 지역 글로벌 발전 방향」 「경북(포항) 지역의 티타늄 산업 육성 전략」 「포항의 가속기클러스터사업 추진 현황과 향후 과제」 「포항 지진의 경제적 영향 추계 및 정책적 시사점」 등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최근 포항이라는 지역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포항의 근대 도시 발전, 역사, 문화, 산업 등을 연구하는 ‘포항지역학연구회’에 몸담으면서 6·25전쟁 당시 포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 기록들을 섭렵해 『(포항지역학연구총서3) 포항 6·25』(공저)를 묶어내기도 했다.
동양의 도자기와 차 문화 등을 오래 연구해 2001년 제1회 세계도자엑스포 국제심포지엄의 기조강연 ‘임진왜란 당시 도공의 도일 배경과 그들의 선택’을 맡았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대학에서 ‘한·중·일의 차 문화와 도자기’를 강의했다. 도예평론가로 다양한 매체에 평론을 발표했다. 그 외에 옮긴 책으로 『숫자의 이면을 귀신같이 읽는 힘, 통계센스』 등이 있다.
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