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이야기'로 본 기회비용과 이혼
“당신을 평생 알고 지내야 한다니 끔찍해.”

영화 ‘결혼이야기’의 주인공 찰리(애덤 드라이버 분)와 니콜(스칼릿 조핸슨 분)은 첫눈에 반해 결혼한다. 귀여운 아들 헨리(아지 로버트슨 분)까지 얻으며 이들의 행복한 생활은 영원할 것 같았다. 균열은 작은 틈에서 시작됐다. 니콜은 결혼과 양육을 위해 꿈을 포기하고 자신의 취향조차 잊은 채 살아가는 생활에 지쳐 간다. 찰리는 아내의 변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뜨거운 사랑은 식었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에 좋은 관계로 헤어지고 싶은 두 사람은 자연스러운 합의를 꾀한다. 하지만 변호사가 개입하며 이혼 과정은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된다.

서로 달랐던 결혼의 기회비용

영화 '결혼이야기'로 본 기회비용과 이혼
지난해 1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결혼이야기’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함께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

영화는 두 사람이 이혼 조정관과 상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서로의 장점을 나열하는 두 사람. 너무 달랐던 이들이 왜 사랑에 빠졌는지 이유들이 나온다. 니콜은 찰리에게 ‘2초 만에’ 반했다고 했다. 당시 니콜의 나이는 스무 살. 영화 ‘올 오버 더 걸’이 히트하며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을 때다. 찰리는 “LA에 남아 스타가 될 수 있었는데 나와 결혼해 뉴욕으로 와 연극을 했다”고 말한다.

니콜은 결혼을 위해 ‘사회적 성공’이라는 기회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경제학에서 기회비용은 그 행동을 취하기로 하면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다른 가능성의 가치를 뜻한다. 찰리 역시 나름의 기회비용을 치른다. 그는 “자수성가한 20대 감독으로서 유명하고 잘나가던 시절 여러 사람이랑 즐기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독신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라는 기회비용을 치러야 가능한 게 결혼이기 때문이다.

소비자 잉여와 네트워크 효과

영화 '결혼이야기'로 본 기회비용과 이혼
그럼에도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이를 통해 얻는 이익이 비용보다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니콜과 찰리는 결혼을 통해 안정감, 사랑하는 사람과의 감정 교류, 아이의 출산 등 여러 장점을 누린다. 경제학적으로 해석하면 결혼을 통한 소비자 잉여가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 잉여는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려고 할 때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금액보다 그 물건을 사용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크면 생기게 된다.

결혼을 선택할 때는 외부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경제학에서는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의 수요에 의해 판단이 영향을 받는 현상을 뜻한다. 밴드왜건 효과가 대표적이다. 주위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사기 시작하거나 사회적 유행이 되면 평소 갖고 싶지 않던 물건이라도 사고 싶어진다. 주변 친구들이 모두 결혼하면 덩달아 나도 결혼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고 실제 결혼을 하게 된다.

그동안의 추억은 모두 매몰비용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니콜은 잃어버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아쉬움이 생겼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떠나온 고향(LA)도 늘 그리웠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남편과 달리 자신은 뒤처지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이런 가운데 찰리가 함께 일하는 무대감독과 외도를 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혼을 결심한다. 결혼을 유지해 얻는 효용보다 비용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결혼보다 이혼이 복잡한 이유는 기회비용과 함께 매몰비용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몰비용은 한번 지출한 뒤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고정비용과는 다르다. 고정비용으로 지출한 것 중에는 원하기만 하면 다시 회수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매몰비용은 절대 회수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그 사람과의 결혼 생활 동안 잃어버린 청춘과 들인 시간, 노력 등이다. ‘내가 들인 돈이 얼마인데’라는 식으로 본전을 따지는 것이 매몰비용을 의미한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선택을 할 때 매몰비용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미 회수할 수 없는 비용 때문에 추가로 투자하는 것은 더 큰 손해를 가져올 수 있어서다.

대리인의 일탈

현실적으로도 이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니콜은 동료로부터 이혼 전문 변호사 노라(로라 던 분)를 소개받는다. 변호사가 개입하며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남편의 변호사 제이(레이 리오타 분)는 니콜의 출연작을 ‘가슴을 노출하는 삼류 영화’라고 혹평한다. 노라는 찰리가 연출한 연극을 ‘보잘것없다’고 깎아내린다. 변호사를 통해 과장되고, 의도하지 않은 내용까지 전달되면서 서로에겐 상처가 남았다. 막대한 변호사 비용 지출로 경제적 어려움도 겪는다. 니콜의 엄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원하지 않는 삼류 연극 연출까지 맡게 된다. 아들 헨리를 위한 학자금 저축도 못 하게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은 두 사람이 처음 말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리인을 통해 비용만 커진 셈이다. 경제학의 주인·대리인 문제다. 변호사는 착수금, 시간당 수임료 등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송 의뢰인의 이해관계를 완벽하게 대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랑은 ‘살아가게 하는 것’

이혼 후 니콜은 연기가 아니라 연출로 에미상 후보에 오른다. 찰리라는 기회비용을 감수하고 그간 간절히 원하던 사회적 성취를 이루게 된 셈이다. 두 사람이 1주일에 절반씩 헨리를 키우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사랑에 빠져 행복했던 시간, 갈등이 시작되며 힘들었던 기간, 이혼을 준비하며 서로를 갉아먹던 시간. 경제학적으로는 매몰비용일지 모르지만 각자에겐 성장을 가져온 시간이기도 했다. 이혼의 과정을 담고 있는 영화의 제목이 ‘결혼이야기’인 것은 이혼 역시 결혼을 완성해가는 한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혼만이 정답일까. 사랑의 효용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찰리가 이혼 후 부른 노래 ‘살아가게 하는 것(Being Alive)’의 가사처럼 사랑은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인 동시에 ‘내가 이겨내도록 도와주고 날 살아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