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중·일의 '과학 삼국지' 20년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13일 발표한 ‘2019년 주요 상품·서비스 점유율 조사’에서 한국은 반도체 등 7개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1년 새 ‘세계 1등’ 상품이 11개에서 7개로 줄어든 일본과 공동 3위에 올랐지만 더 무서운 건 중국의 약진이다. 세계 1등 상품 수를 12개로 늘린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앞서 지난 7일에는 한·중·일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는 통계가 일본에서 나왔다.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의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18년 중국은 자연과학 분야 논문 수에서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일본은 과학 논문 수와 특허 출원 수를 한 나라의 기술 경쟁력과 연구개발 성과를 측정하는 기본 지표로 보고 해마다 경쟁국의 현황을 집계한다. 매년 발표되는 과학 논문과 특허 출원의 숫자가 들쑥날쑥한 점을 감안해 최근 3년간 평균으로 순위를 매기는 등 정확성에도 공을 들인다.

[특파원 칼럼] 한·중·일의 '과학 삼국지' 20년
일본은 1996~1998년까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자연과학 논문을 써내는 기초과학 대국이었다. 연평균 논문 수는 6만704건으로 전 세계에서 발표되는 논문의 8.7%가 일본 과학자의 결과물이었다. 중국은 1만7034건(2.4%)으로 9위, 한국은 7604건(1.1%)으로 16위였다.

중국은 2006~2008년 일본을 제친 데 이어 2016~2018년 마침내 미국마저 밀어냈다. 2018년까지 3년 동안 중국에서는 연평균 30만5927건의 과학논문이 쏟아졌다. 전 세계 논문의 19.9%에 달한다. 일본은 3위(6.7%)에서 4위(4.2%)로 뒷걸음질쳤다.

‘과학기술 한·중·일 삼국지’에서 한국의 미래는 밝지만은 않다. 한국의 논문 순위는 20년간 11위(2.6%)에서 6위(3.2%)로 올랐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주요 논문에 인용되거나 유명 학술지에 발표되는 빈도로 평가하는 ‘주목도 상위 10% 논문’에서 한국의 순위 변화는 21위(0.6%)에서 12위(2.1%)로 여전히 10위권 밖이다. 상위 1% 논문도 23위(0.3%)에서 13위(1.6%)다. 일본이 4위(4.8%)에서 9위(2.0%)로 떨어진 것을 위안 삼기에는 15위(0.8%)에서 2위(21.9%)로 올라선 중국이 더 위협적이다.

과학 성과를 실제 기술로 발전시킨 수치를 보여주는 특허군(patent family·2개 이상의 국가에 출원된 특허) 통계에서도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다. 일본은 20년 새 특허군 순위가 2위(2만4470건·26.9%)에서 1위(6만1753건·26.3%)로 올랐다. 한국은 7위(2582건·2.8%)에서 4위(2만3963건·10.2%)로 격차를 좁혔지만 그 사이 순위권 밖이었던 중국이 5위(2만1191건·9.0%)까지 치고 올라왔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연간 보고서는 주요국의 기술무역 수지도 하이테크 산업(의약품, 전자기기, 항공·우주)과 미디엄테크 산업(화학제품, 전기기기, 기계, 자동차)으로 나눠 집계한다.

한국은 하이테크 산업 수지에서 2003년 이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2018년에는 하이테크 산업 수출이 수입의 1.88배였다. 일본은 미디엄테크 수지에서 1990년 통계 작성 이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9년은 수출이 수입의 2.59배였다. 한국은 1.76배로 2012년부터 독일과 2위 자리를 놓고 지속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기술무역 수지의 순위가 높은 건 그만큼 첨단산업의 수출의존도가 높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첨단산업의 씨앗인 과학기술 연구 부문에서 미·중 양강 체제의 고착화는 한국과 일본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2018년 중국은 전년보다 10% 늘어난 58조엔을 연구개발비로 쏟아부었다. 1~2년 뒤면 연구개발비에서도 1위 미국(60조700억엔)을 따라잡을 전망이다. 3위 일본은 17조9000억엔에 그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4.81%로 부동의 세계 1위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10조3000억엔으로 5위다.

기술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일본,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과제를 안고 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1등 상품을 보유한 사실에 만족하기보다 과학기술 연구 성과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감염증 논문 경쟁력도 취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치열해진 감염증 논문 경쟁에서 한국은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8년 세계적으로 발표된 감염증 관련 논문은 1만5676건으로 1981년의 2468건에 비해 6.4배 늘었다. 특히 21세기 들어 논문 수가 급증해 2008년부터는 연간 1만 건을 넘어섰다. 2000년 이후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 자주 발생한 탓에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감염증 논문에 관한 한 후진국이다. 일본은 1996~1998년 6위(연평균 130건), 2006~2008년 9위(295건), 2016~2018년 8위(493건)로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년 전 순위권에 들지 못했던 중국은 2016~2018년 2위(993건)까지 치고 올라갔다. 반면 한국은 15위권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인도(12위)와 남아프리카공화국(15위)보다 순위가 처진다.

중국은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2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2014년 조류인플루엔자를 계기로 논문이 급증했다. 한국은 비슷한 유행병을 겪었지만 논문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로 삼지 못했다는 평가다.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