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반도체 핵심기지인 경기 화성사업장엔 ‘동학산’이 있다. 해발 121m로 야트막하지만 오르내림이 심해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라고 한다. 사업장 조성 공사 때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돼 동학산을 깎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다. 국가 핵심기술인 반도체를 만드는 사업장 안에 있어 외부인은 접근할 수 없다.

'반도체 신화' 뒤엔 체력…김기남 부회장 '등산경영'
동학산을 거의 매일 오르는 사람이 있다. 삼성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김기남 DS(반도체부품)부문 대표(부회장·사진)다. 김 부회장은 외부 오찬이 없으면 구내식당에서 식사한 뒤 운동화를 신고 산행에 나선다. 보통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등산 코스인데 김 부회장은 4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른다고 한다. 수년째 동학산을 오르며 신체를 단련한 덕분이다. 1958년생으로 예순을 넘은 김 부회장이 군살 없는 체형을 유지하는 비결도 등산이다.

산행엔 보통 DS부문 임원 두세 명이 김 부회장을 돌아가며 따른다. 일반 직원들은 웬만하면 부르지 않는다. 동학산 등반 중엔 반도체 업황과 투자, 경쟁사 동향 등 경영 현안에 대한 논의도 이뤄진다는 게 산을 함께 오른 임원들의 전언이다. 산행 중엔 주로 김 부회장이 얘기를 먼저 꺼내는데, 자주 산에 오르지 않은 임원들은 숨이 가빠 대화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동반자들은 김 부회장의 빠른 걸음과 풍부한 폐활량에 두 번 놀란다고 한다”며 “동학산은 임직원의 건강과 DS부문 경영에 동시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연경관”이라고 말했다.

‘등산 경영’에는 건강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김 부회장의 평소 생각이 반영돼 있다. 그는 2019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에 선정될 정도로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한국 반도체사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개발자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일반 연구원 시절 ‘체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김 부회장은 DS부문 직원들에게도 건강을 위한 산책 등을 권장하고 있다. 오전 11시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화성사업장에 ‘차 없는 거리’를 시행하고 ‘보행 중 스마트폰을 보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