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前 전쟁의 폐허에서도 향촌동엔 바흐의 음악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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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예술인들 교감하고 영감 얻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녹향
꽃자리·백조·청포도 다방 …
전선문화의 흔적·기억 보존
문화 발전의 DNA 삼아야
예술인들 교감하고 영감 얻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녹향
꽃자리·백조·청포도 다방 …
전선문화의 흔적·기억 보존
문화 발전의 DNA 삼아야
코로나19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서는 많은 예술인의 창작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일상적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모진 현실 속에서도 왕성한 예술활동을 이어간 사례는 약 70년 전에도 있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많은 예술인이 대구로 피란했다. 박두진·박목월·마해송·서정주·유치환 등 전국의 저명 예술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고난과 시름의 산물을 남겨준 전쟁의 북새통 속에서도 시인 구상·조지훈, 화가 이중섭 등 많은 인사가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 전선(戰線)문화의 꽃을 피웠다. 예술인들은 출신과 계층 등을 가리지 않고 아지트 역할을 한 음악감상실, 다방, 대폿집, 극장 등에서 삶의 애환과 예술에 대한 창작열을 달래며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예술적 영감을 수혈해 주는 텃밭과 같은 공간이 있었기에 적어도 문화예술 측면에서는 참혹했던 6·25전쟁 시기가 잃어버린 시간만은 아니었다.
전쟁 중 향촌동은 시대의 고통을 넘어선 문화풍경이 있었다. 초토 위에서 클래식음악이 들린다고 외신기자들조차 놀라워했다. 미국의 음악잡지 《에튀드(Etude)》는 1953년 10월호에 ‘코리아 콘체르트’라는 제목으로 음악감상실 ‘르네상스’를 ‘전쟁의 폐허더미에서 바흐의 음악이 흐르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1946년 광복 이듬해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클래식음악 감상실 녹향은 이중섭이 ‘황소’ 은지화를 그리고, 양명문이 가곡 ‘명태’를 작사했던 곳이다.
당시 다방은 출판기념회 등이 열리는 문화예술 종합공간 역할을 했다. 노벨문학상 본심 후보에 두 차례나 오른 구상의 ‘초토의 시’ 출간기념회가 열렸던 ‘꽃자리다방’, 당시 보기 드문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던 ‘백조다방’, 이육사의 시 청포도에서 그 이름을 딴 ‘청포도 다방’ 등은 예술인들의 교감과 예술적 영감을 위한 안식처였다.
향촌동 일대에서는 아직도 그 시·공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대표적 사례로 출판사 ‘문성당’이 있다. 문성당 건물은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타일벽화를 가진 건물로 70년 전 당시 형태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광복 이후 모든 책이 일본어에서 국어로 바뀔 것을 예측한 문성당 대표 주인용이 교과서, 인문서적, 교양서 등을 출판했다. 문성당은 유치환의 《청마시집》과 같은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집을 많이 남겼다. 출판사업으로 성공한 후 사조산업(주)까지 창립하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대구의 대표적 근대 문화예술인이자 경제인으로 회산(晦山) 박기돈이 있다. 박기돈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많은 사찰의 편액을 쓴 서예가이자 대구상무소(현 대구상공회의소) 초대 소장을 지냈다. 또한 국채보상운동을 비롯해 애국계몽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문성당과 박기돈 관련 사실과 유산은 예술과 경제의 가치를 지역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귀중한 자산이다. 지역 문화계와 경제계에서 예술과 기업 자산을 활용하는 것은 상생발전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를 지닌 일이다.
1953년, 서울의 중앙국립극장이 대구 키네마 구락부(현 CGV한일)로 피란을 와 ‘대구국립극장’ 시대가 열린다. 대구국립극장은 국립극단 신협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을 한 종합예술의 산실로서 본격적인 연극운동의 싹을 틔웠다. 또한 대학생 중심의 국립극장 직속 연구단체인 ‘영남연극회’를 통해 지역 공연예술의 뿌리를 더욱 탄탄하게 했다.
또 이 시기에 ‘상고예술학원(尙古藝術學院)’이 있었다. 상고예술학원은 6·25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대구에 피란 온 예술인이 지역 예술인들과 힘을 합쳐 결성한 국내 최초의 예술 전문교육기관이었다. 기관명은 시인 이상화와 고월 이장희의 호 가운데서 ‘尙’자와 ‘古’자를 따서 지었다.
6·25전쟁기의 대구 예술계는 암흑의 시대에도 살아있는 미래를 예언하고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문학·음악·연극·미술 등의 다양한 예술인이 쌓아올린 지층은 대한민국 예술 지형도의 축소판이었다.
향촌동을 중심으로 한 구(舊)도심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유서 깊은 공간이다. 단순히 유명 예술인들이 있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들의 예술활동과 생활에 대한 스토리가 오롯이 남아 있어서 더 그렇다.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다. 도시의 문화유산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며, 이는 새로운 문화 발전 DNA의 핵심 키가 될 수 있다. 전선(戰線)문화와 관련한 흔적과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아카이빙과 함께 장소의 상징적 재생을 통해 미래유산으로 잘 보존해야 한다. 공간 스토리텔링은 공간의 인문학적 가치를 재현하고 장소성을 실현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옛 기억을 재현하는 의미를 넘어서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고 궁극적으로 도시 전반에 활력을 부여하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
고난과 시름의 산물을 남겨준 전쟁의 북새통 속에서도 시인 구상·조지훈, 화가 이중섭 등 많은 인사가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 전선(戰線)문화의 꽃을 피웠다. 예술인들은 출신과 계층 등을 가리지 않고 아지트 역할을 한 음악감상실, 다방, 대폿집, 극장 등에서 삶의 애환과 예술에 대한 창작열을 달래며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예술적 영감을 수혈해 주는 텃밭과 같은 공간이 있었기에 적어도 문화예술 측면에서는 참혹했던 6·25전쟁 시기가 잃어버린 시간만은 아니었다.
전쟁 중 향촌동은 시대의 고통을 넘어선 문화풍경이 있었다. 초토 위에서 클래식음악이 들린다고 외신기자들조차 놀라워했다. 미국의 음악잡지 《에튀드(Etude)》는 1953년 10월호에 ‘코리아 콘체르트’라는 제목으로 음악감상실 ‘르네상스’를 ‘전쟁의 폐허더미에서 바흐의 음악이 흐르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1946년 광복 이듬해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클래식음악 감상실 녹향은 이중섭이 ‘황소’ 은지화를 그리고, 양명문이 가곡 ‘명태’를 작사했던 곳이다.
당시 다방은 출판기념회 등이 열리는 문화예술 종합공간 역할을 했다. 노벨문학상 본심 후보에 두 차례나 오른 구상의 ‘초토의 시’ 출간기념회가 열렸던 ‘꽃자리다방’, 당시 보기 드문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던 ‘백조다방’, 이육사의 시 청포도에서 그 이름을 딴 ‘청포도 다방’ 등은 예술인들의 교감과 예술적 영감을 위한 안식처였다.
향촌동 일대에서는 아직도 그 시·공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대표적 사례로 출판사 ‘문성당’이 있다. 문성당 건물은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타일벽화를 가진 건물로 70년 전 당시 형태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광복 이후 모든 책이 일본어에서 국어로 바뀔 것을 예측한 문성당 대표 주인용이 교과서, 인문서적, 교양서 등을 출판했다. 문성당은 유치환의 《청마시집》과 같은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집을 많이 남겼다. 출판사업으로 성공한 후 사조산업(주)까지 창립하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대구의 대표적 근대 문화예술인이자 경제인으로 회산(晦山) 박기돈이 있다. 박기돈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많은 사찰의 편액을 쓴 서예가이자 대구상무소(현 대구상공회의소) 초대 소장을 지냈다. 또한 국채보상운동을 비롯해 애국계몽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문성당과 박기돈 관련 사실과 유산은 예술과 경제의 가치를 지역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귀중한 자산이다. 지역 문화계와 경제계에서 예술과 기업 자산을 활용하는 것은 상생발전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를 지닌 일이다.
1953년, 서울의 중앙국립극장이 대구 키네마 구락부(현 CGV한일)로 피란을 와 ‘대구국립극장’ 시대가 열린다. 대구국립극장은 국립극단 신협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을 한 종합예술의 산실로서 본격적인 연극운동의 싹을 틔웠다. 또한 대학생 중심의 국립극장 직속 연구단체인 ‘영남연극회’를 통해 지역 공연예술의 뿌리를 더욱 탄탄하게 했다.
또 이 시기에 ‘상고예술학원(尙古藝術學院)’이 있었다. 상고예술학원은 6·25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대구에 피란 온 예술인이 지역 예술인들과 힘을 합쳐 결성한 국내 최초의 예술 전문교육기관이었다. 기관명은 시인 이상화와 고월 이장희의 호 가운데서 ‘尙’자와 ‘古’자를 따서 지었다.
6·25전쟁기의 대구 예술계는 암흑의 시대에도 살아있는 미래를 예언하고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문학·음악·연극·미술 등의 다양한 예술인이 쌓아올린 지층은 대한민국 예술 지형도의 축소판이었다.
향촌동을 중심으로 한 구(舊)도심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유서 깊은 공간이다. 단순히 유명 예술인들이 있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들의 예술활동과 생활에 대한 스토리가 오롯이 남아 있어서 더 그렇다.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다. 도시의 문화유산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며, 이는 새로운 문화 발전 DNA의 핵심 키가 될 수 있다. 전선(戰線)문화와 관련한 흔적과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아카이빙과 함께 장소의 상징적 재생을 통해 미래유산으로 잘 보존해야 한다. 공간 스토리텔링은 공간의 인문학적 가치를 재현하고 장소성을 실현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옛 기억을 재현하는 의미를 넘어서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고 궁극적으로 도시 전반에 활력을 부여하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