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포장된 이벤트는 본질을 가린다. 대중이 그럴듯하게 꾸민 쇼에 환호할수록 정작 중요한 콘텐츠가 설 자리는 좁아진다. 그 대가(비용)는 열광과 흥분의 포로가 됐던 대중이 두고두고 치러야 한다.” 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요즘 미국 대통령 선거 보도에 담고 있는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WSJ가 지난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확정된 조 바이든의 ‘콘텐츠’를 따지는 사설과 칼럼을 부쩍 게재하고 있다. 경쟁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非)호감 자책골’ 덕분에 당선이 유력해진 그의 선거공약에 ‘재난 소지’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 성장이냐 후퇴냐’(7월 9일자) ‘심각해질 바이든발(發) 세금인상’(7월 15일자) ‘바이든의 기만적인 급진주의’(7월 26일자)에 이어 전당대회가 열린 지난 18일자에는 ‘버니 샌더스의 시간’을 큰 사설로 냈다. 급진 사회주의자로 낙인 찍혀 민주당 경선에서 중도 낙마한 샌더스 전 상원의원의 공약을 바이든이 고스란히 수용했음을 파헤친 글이다.

바이든이 샌더스 지지자들의 표를 빨아들이기 위해 작성한 110쪽짜리 ‘공동공약집’에 실업급여 인상, 대학생 학비대출금 탕감과 연간소득 12만5000달러(약 1억5000만원) 이하 가구 공립대학 무상교육, 60세 이상 의료보장 대폭 확대 등 샌더스의 공약을 대부분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이런 무상복지에 얼마만큼의 재정이 필요한지는 밝히지 않은 채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했는데,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서 시장 활력만 거꾸러뜨릴 게 뻔하다는 경제계의 근심을 전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ABC 등 미국 주류를 꿰찬 좌파성향 ‘동부언론(eastern coast journal)’들이 트럼프의 돌출행동에 초점을 맞춰 맹폭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겉모습보다 내용물’을 강조하는 WSJ의 관점은 참고할 만하다. 거칠고 사나운 트럼프와 비교되는 신사적인 이미지로 중도층 지지를 주워 담고 있는 바이든이 미국을 어떤 나라로 이끌지 진지하게 짚어보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WSJ가 이런 진단을 내놓는 것은 2009년부터 8년간 미국을 이끈 버락 오바마의 ‘경제실정(失政)’ 비용이 엄청났다는 인식에서다. 하버드 로스쿨을 최우등생으로 졸업한 엘리트 변호사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대통령이었던 오바마는 화려한 언변까지 갖춰 대중으로부터 ‘역대급’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복지 수혜기준을 낮추고 ‘환경 및 약자 보호’를 내세워 금융 서비스 제조업분야 기업들에 족쇄를 채운 결과 미국 경제는 ‘역대급’ 추락을 맛봐야 했다.

1948년부터 2008년까지 60년 동안 3.4%를 기록했던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이 오바마 임기 8년간 1.47%로 곤두박질친 건 “전적으로 잘못된 정책 탓”(킴벌리 스트라셀 WSJ 칼럼니스트)이라는 지적이다. 트럼프가 4년 전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과감한 세금인하와 규제완화를 밀어붙였고, 이내 3%가 넘는 연간 성장률을 회복함으로써 정책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오바마 시절 미국 성장률이 과거의 평균만 기록했어도 4조3000억달러(약 5095조원)의 국부(國富)를 지킬 수 있었다는 계산도 있다.

오바마 시절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이 내건 공약은 미국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던 ‘오바마노믹스’를 부활시키는 데 더해 샌더스의 급진 정책까지 포괄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이벤트에 묻혀 간과돼서는 안 된다는 게 미국 경제계의 절박함이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선거에 의한 민주주의가 온전하게 작동하기 위한 조건으로 투표기회의 평등, 효과적인 참여 등과 함께 ‘선택대안들에 대한 계몽된 이해’를 꼽았다.

선거는 국정을 맡길 대리인을 뽑는 것인 만큼 각 후보가 제시한 공약(선택대안)을 제대로 파악해서 지지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언변이나 겉모습에 빠지는 ‘미인투표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경구다. ‘민주주의 종주국’ 미국의 두 달 남짓 남은 대선 결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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