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순의 과학의 창] 종교적 맹신과 과학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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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기점으로 사랑제일교회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무섭다. 이번 집단감염은 단순히 감염자 수가 많은 것에 그치지 않고 연락 두절, 검사와 치료 거부, 병원 탈출 등의 행위를 일으키며 의도적으로 방역망에 구멍을 내는 사람이 자꾸 눈에 띈다는 점에서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 3월 신천지, 5월 이태원 클럽발 집단 감염이 일어났을 때도 방역당국의 연락을 피해 숨거나 병원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는 사이비 종교나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해 숨었다면, 이번에는 방역망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이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방역 활동을 비롯해 코로나19 존재마저도 정부의 음모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를 마주한 듯하다.
그 불신의 정도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생존본능 중 하나인 질병에 대한 공포마저 뛰어넘고 있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마스크 착용 여부를 정치적 쟁점으로 만든 결과 아직까지도 하루에 수만 명씩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세계에서 과학이 가장 잘 발달했고, 방역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을 여력이 있는 미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방역이란 것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정치권과 국민의 협조 없이 몇몇 유능한 과학자들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반면, 과학은 개인의 감각과 밀착된 경험에 기반하지 않는다. 코로나19에 감염돼 고통을 느꼈다고 해서 그 경험을 통해 바이러스를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이 생기지 않는다. 바이러스의 존재는 정해진 절차를 충실히 따른 테스트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고, 이런 테스트 방법의 기저에는 수백 년간 인간이 축적한 과학적 지식과 원리가 깔려 있다.
흔히 종교는 절대자의 존재 또는 절대자의 존재를 설파하는 타인의 언어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고 과학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의심하며 스스로 검증 가능한 사실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종교야말로 개인의 경험을 통해 믿음을 검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데 비해 과학은 타인의 경험을 신뢰할 것을 요구한다. 실제로 선대 과학자들이 이룩한 지식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쌓아나가야 뉴턴이 말한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멀리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만 세상에는 온갖 주장이 난무하기 때문에 무엇을 선대의 지식으로 믿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고, 이 끊임없는 성찰의 대상에는 본인의 경험마저도 포함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각자의 경험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대신 ‘나의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신뢰할 수 있는 경험과 결론인가?’라는 의문을 품는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
그 불신의 정도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생존본능 중 하나인 질병에 대한 공포마저 뛰어넘고 있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마스크 착용 여부를 정치적 쟁점으로 만든 결과 아직까지도 하루에 수만 명씩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세계에서 과학이 가장 잘 발달했고, 방역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을 여력이 있는 미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방역이란 것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정치권과 국민의 협조 없이 몇몇 유능한 과학자들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종교는 개인의 경험 통해 믿음을 검증
그러면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이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보통 무언가를 맹신하는 것을 보면 과학적 사고가 결여됐다고 하는데, 이런 맹목적 믿음은 대체로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생겨난다. 우리는 간혹 본인이 신을 영접했다거나 사후세계를 보고 왔다거나 또는 특정 치료제나 치료법을 택한 후 불치병이 치유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철저하게 거짓말하고 있다고 믿을 이유가 딱히 없다면, 개개인이 그런 판단을 하게 만든 모종의 경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신이나 사후세계의 존재,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치료법의 효능에 대한 주장은 스스로의 경험을 서술한 것이기 때문에 외부와의 별다른 맥락 없이 손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결론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론들은 적어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결론이다.반면, 과학은 개인의 감각과 밀착된 경험에 기반하지 않는다. 코로나19에 감염돼 고통을 느꼈다고 해서 그 경험을 통해 바이러스를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이 생기지 않는다. 바이러스의 존재는 정해진 절차를 충실히 따른 테스트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고, 이런 테스트 방법의 기저에는 수백 년간 인간이 축적한 과학적 지식과 원리가 깔려 있다.
타인의 경험을 신뢰해야 하는 과학
과학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상대로 한 탐정놀이로, 과학적 이론과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추론이 요구된다. 설령 그 내용을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경험을 통해 체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과학적 법칙을 경험하는 과정을 과학실험이라고 한다면, 중·고등학교에서 수행하는 간단한 실험 몇 가지를 제외하면 극소수의 고도로 훈련된 과학자 또는 과학도만이 수행해볼 수 있을 뿐 대부분 사람에게는 평생 단 한 번도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극소수의 과학자조차 평생 본인의 전공 분야에 제한된 몇 가지 내지는 몇십 가지 실험을 수행할 뿐 과학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과학의 발전은 철저하게 몇몇 타인에 대한 믿음 위에서 이뤄진다.흔히 종교는 절대자의 존재 또는 절대자의 존재를 설파하는 타인의 언어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고 과학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의심하며 스스로 검증 가능한 사실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종교야말로 개인의 경험을 통해 믿음을 검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데 비해 과학은 타인의 경험을 신뢰할 것을 요구한다. 실제로 선대 과학자들이 이룩한 지식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쌓아나가야 뉴턴이 말한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멀리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만 세상에는 온갖 주장이 난무하기 때문에 무엇을 선대의 지식으로 믿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고, 이 끊임없는 성찰의 대상에는 본인의 경험마저도 포함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각자의 경험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대신 ‘나의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신뢰할 수 있는 경험과 결론인가?’라는 의문을 품는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