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순의 과학의 창] 종교적 맹신과 과학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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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순의 과학의 창] 종교적 맹신과 과학적 사고](https://img.hankyung.com/photo/202008/07.21675932.1.jpg)
그 불신의 정도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생존본능 중 하나인 질병에 대한 공포마저 뛰어넘고 있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마스크 착용 여부를 정치적 쟁점으로 만든 결과 아직까지도 하루에 수만 명씩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세계에서 과학이 가장 잘 발달했고, 방역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을 여력이 있는 미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방역이란 것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정치권과 국민의 협조 없이 몇몇 유능한 과학자들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종교는 개인의 경험 통해 믿음을 검증
![[최형순의 과학의 창] 종교적 맹신과 과학적 사고](https://img.hankyung.com/photo/202008/AA.23606479.1.jpg)
반면, 과학은 개인의 감각과 밀착된 경험에 기반하지 않는다. 코로나19에 감염돼 고통을 느꼈다고 해서 그 경험을 통해 바이러스를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이 생기지 않는다. 바이러스의 존재는 정해진 절차를 충실히 따른 테스트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고, 이런 테스트 방법의 기저에는 수백 년간 인간이 축적한 과학적 지식과 원리가 깔려 있다.
타인의 경험을 신뢰해야 하는 과학
과학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상대로 한 탐정놀이로, 과학적 이론과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추론이 요구된다. 설령 그 내용을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경험을 통해 체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과학적 법칙을 경험하는 과정을 과학실험이라고 한다면, 중·고등학교에서 수행하는 간단한 실험 몇 가지를 제외하면 극소수의 고도로 훈련된 과학자 또는 과학도만이 수행해볼 수 있을 뿐 대부분 사람에게는 평생 단 한 번도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극소수의 과학자조차 평생 본인의 전공 분야에 제한된 몇 가지 내지는 몇십 가지 실험을 수행할 뿐 과학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과학의 발전은 철저하게 몇몇 타인에 대한 믿음 위에서 이뤄진다.흔히 종교는 절대자의 존재 또는 절대자의 존재를 설파하는 타인의 언어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고 과학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의심하며 스스로 검증 가능한 사실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종교야말로 개인의 경험을 통해 믿음을 검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데 비해 과학은 타인의 경험을 신뢰할 것을 요구한다. 실제로 선대 과학자들이 이룩한 지식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쌓아나가야 뉴턴이 말한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멀리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만 세상에는 온갖 주장이 난무하기 때문에 무엇을 선대의 지식으로 믿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고, 이 끊임없는 성찰의 대상에는 본인의 경험마저도 포함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각자의 경험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대신 ‘나의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신뢰할 수 있는 경험과 결론인가?’라는 의문을 품는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