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 가트·알렉산더 야콥슨 지음
유나영 옮김 / 교유서가
608쪽│3만2000원
이스라엘 정치·군사학자 아자 가트와 역사학자 알렉산더 야콥슨이 함께 쓴 《민족》은 전통주의 관점에서 세계 역사를 통틀어 종족은 언제나 고도로 정치적이었으며, 민족과 민족국가는 수천 년 전 국가가 탄생한 이래로 계속해 존재해왔음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인간이 종족이라는 특유의 집단을 이루는 현상은 자연적으로 진화한 인간 본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회생물학 원리를 인용해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근원을 설명한다. 이어 종족·인족·민족이란 개념을 단계적으로 구분한다. 종족은 상상 혹은 실제 친족과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 인족은 친족과 문화를 공유한다는 의식을 뚜렷하게 지닌 집단이다. 민족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의식을 뚜렷이 지니면서 국가 안에서 정치적 주권과 자치권을 가졌거나 이를 추구한다. 저자들은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며 정치적 종족성을 띤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런 개념 정의를 바탕으로 수렵채집 집단에서 기원한 친족 집단이 씨족을 거쳐 부족으로 발전한 과정과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5000년 전 사이에 부족 조직으로부터 대규모 종족이 형성되고 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풀어낸다. 고대 이집트와 중국을 비롯해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유럽에서 생겨난 민족국가까지 세계 거의 모든 지역으로 사례 연구를 확장한다.
결론에 해당하는 6장에서 저자들은 민족이 대중 주권, 커뮤니케이션, 도시화, 이주 등 근대적 혁명에 의해 구성된 산물이라는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전(前)근대에 이미 존재했던 대중적 민족 정서가 근대에 만들어진 혁신적 방식들에 의해 해방·변형돼 훨씬 더 큰 힘을 갖게 되면서 그 정당성을 크게 강화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민족과 민족국가는 고대로부터 세계사에 팽배했던 현상”이라며 “근대주의·도구주의 이론가들은 종족과 민족 현상의 깊은 뿌리를 보지 못하고 민족을 순수한 사회역사적 구성물로만 취급했다”고 지적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