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근로자들, 임금 중 일부 온누리 상품권 수령 결정
"공공부문서 일하는 만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해 높아"
"사회적 책임은 자발성에 기반해야…규제완화 병행 필요"
공공 부문이 앞장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는 취지의 제안이었지만 당장 공무원노조가 격렬하게 반발했다. '다른 길'은 없는 걸까. 이달 25일 임금 일부를 '온누리 상품권'으로 받기로 한 한국전력 근로자들의 선택이 주목받은 이유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노사 간 공감대가 형성됐다. 온누리 상품권으로 지급되는 액수만 105억원에 달한다.
현행 근로기준법 43조에 따르면, 노사가 단체협약을 거치면 임금 중 일부를 상품권 등으로 받을 수 있다. 한전 근로자들의 이같은 결정에는 전국을 돌며 현장 이야기를 들은 최철호 전국전력노조 위원장(사진)이 있었다.
한전 1만8000여명 조합원을 대표하는 최철호 위원장은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한국전력 남서울본부에서 가진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올 3월 노조위원장 선거를 마친 뒤 전국 현장을 도는 과정에서 온누리 상품권으로 임금을 대신해보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다수 한전 근로자들이 취지에 동의하고 있다"면서 "공공 부문에서 일하는 만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라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이슈가 된 조정훈 의원의 제안과 관련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공공 부문의 사회적 책임은 자발성에 기반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공 부문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완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최철호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최근 한전 근로자들이 급여 중 일부를 온누리 상품권으로 받기로 했다. 배경이 궁금하다.연초부터 코로나19가 불거지지 않았나. 관련 기부활동 등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한층 안 좋아지고 집중 수해 피해도 발생했다.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은 더 어려워졌다. 그런 와중에 정부 권고도 있었다. 공기업 중에서도 우리(한전)가 맏형 아닌가. 그렇다 보니 여러 시선이 있다. 내부적으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해왔다. 상품권 지급 얘기가 나온 김에 노사 간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해보자"고 했다. 임금 반납은 아니고 임금 일부를 상품권으로 줘 소비를 장려하자는 취지다.▶ 합의 도출이 쉽진 않았을 텐데, 직접 전국을 돌며 설득했다고 들었다.
이것 때문이라기보단 올 3월 선거를 했다. 저희는 모바일 투표로 노조위원장을 선출한다. 지난해 의결해 올해 처음 도입했다. 제가 지난해까지 하고 이번에 재선했다. 현장과의 소통과 스킨십이 필요했다. 상품권 지급을 지시하듯 하면 현장 반발이 커지기에 이것과 더불어 현안을 현장에서 설명하려 전국을 다녔다. 다행히 현장에서 많은 분이 공감했다. 공기업인 만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이 있어 많은 분이 이해해줬다.▶ 반발이 있지는 않았는가.
지금도 있다. 사내 게시판에 그런 글들이 올라온다. 취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온누리 상품권 사용이 불편하다거나, 지역사랑 상품권이 낫지 않았겠냐는 건의 등이다. 한전 노조는 각 지역 단위, 광역시도단위로 전체 38개 지부가 있다. 하위 단위 조직인 시군단위로 지회가 300개가 있다. 지역별로 조합 간부들을 만나 취지 설명을 하고 의견도 들었다.▶ 조정훈 의원이 2차 재난지원금 마련을 위한 임금 삭감 주장을 들고 나왔다. 공공 부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지만 공무원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한전 근로자들은 조정훈 의원의 발언에 공감한 것이라 볼 수 있나.
대부분 공감을 얻었음에도 현장까지 전달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다. 지역사랑 상품권은 행정적 문제가 있다. 이렇게 대규모로 발급되지 않는다. 사전에 조폐공사에 요청한 뒤 찍어내는 등 행정적 문제를 감안한 것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선 당연히 공감한다. 저희도 임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하기에 그나마 가능했지, 반납하라고 했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트라우마가 있다. 과거 정부에선 이럴 때 강제적으로 반납을 지시한 적도 있다. 경제적 문제도 있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게 더 크다. 임금은 '노력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노사 간 합의에 대한 불신도 야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이어야 한다. 강제로 진행되는 것은 더 큰 사회적 손실로 돌아온다.▶ 언론에 알려진 이후 조정훈 의원도 만났다고 들었는데.
저희도 지난번에 긴급재난지원금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가 공기업인 만큼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엔 대부분 동의했다. 그러면 반납을 할 것인지, 열악한 지역에 소비를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 또 급여 수준이 제각각 다르므로 어떻게 할지도 연구했다. 모두가 부담하되 차등을 두는 방식을 적용하기 위한 고민이 있었다.
상품권으로 임금 일부를 받은 방식에 대해 조정훈 의원도 좋은 사례라 평가했다. 모범적 사례라고 해다. 조정훈 의원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나. 전력 사업과 공기업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공기업은 공공 부문과 사기업이 섞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공기업이 300개 정도가 있는데 상장 기업이 8개고 한전만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다. 한전은 기업성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내에선 공공 부문을 정부 소유라는 이유로 획일적 관리를 하려고 한다.▶ 자율성이 더 주어지면 공공 부문에서의 사회적 책임도 더 활발해질까.
공공 부문도 업종에 따라 특성이 다른 만큼 정부도 달리 대응해야 한다. 정부에서 관여가 지나치고 모든 걸 규제하려 하면 안 된다. 한때 정부 관리가 필요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방식이 지금도 계속되는 건 문제다. 공공 부문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 없이 관성화된 패턴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규제와 통제를 받다 보면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 공기업에 자율성을 주고 책임을 묻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렇다. 내부 구성원들에게 자율적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영역도 지금보다 활성화될 것이다. 사회적 책임마저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게 웃기지 않은가. 기존과 같은 시스템으로는 되지 않는다. 한전의 경우에도 적정한 이익만 내면 된다. 에너지 전환에 대한 공공적 책임을 지고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한다. 모든 사안에 대해 정부가 일일이 관여할 필요가 있을까.▶ 앞서도 고통 분담을 위한 급여 반납, 성금 모금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전 근로자들 전체가 다 한 것은 아니다.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 한 것이다. 저희는 '러브펀드'라고 해 직원들이 5000원 내면 매칭해서 평상시 사회 봉사활동을 한다. 그렇게 모은 재원으로 마스크 지원 사업을 하고, 11개 자회사와 함께 기부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코로나19 국면이 이어질 것이다. 공공 부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
한전은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왔다. 그래서 지역경제에 민감하다.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면 전기 사용이 늘어난다. 그러면 한전이 성장하고 지사가 신설된다. 한전이 발전하는 것은 지역경제가 발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도 현장은 지사가 잘 안다. 경제가 어려우면 요금 미납이 늘어난다. 어느 호텔이, 어느 가게가 힘든지 파악된다. 전력 사업은 지역주민 동의 없이는 안 된다. 지역사회에서의 교류나 소통, 교감이 중요하다.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
그래서 지역별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집수리 봉사, 다문화 가정 지원사업, 관내 어린이들을 위한 전기 체험관 운영 등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어려운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을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은 해나갈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의무는 전력산업이 국민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 역할을 성실히 잘하는 것이 가장 큰 사회적 책무라 생각한다.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