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연주자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열려 있던 건반 덮개를 닫았다. 그러고는 왼손에 든 휴대용 원형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그는 가만히 있었다. 이따금씩 악보를 넘길 뿐이었다. 그 악보엔 아무런 음표도 없었다. 알파벳으로 ‘TACET(조용히)’이라고 적혀 있을 뿐. 정적 속에 4분33초가 지나자 다시 건반 덮개를 열었다. 그리고 퇴장했다.
68년 전 오늘,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사진)가 작곡한 ‘4분 33초’가 처음 연주됐을 때의 모습이다. 케이지는 ‘4분 33초’를 통해 작곡가나 연주자의 계획에 의한 음악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한 ‘우연성’의 음악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주자의 부작위와 침묵 속에서 관객의 숨소리 등 우연적으로 일어나는 자그마한 모든 소리가 전부 음악이라는 케이지의 해석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우연성을 강조하는 케이지의 이 같은 음악관은 후대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1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난 그는 ‘가상풍경’(1951),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서트’(1954~1958) 등의 작품을 남기고 1992년 8월 숨졌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