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원이 투자된 삼성전자의 경기 평택 2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이재용 부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해 8월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30조원이 투자된 삼성전자의 경기 평택 2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이재용 부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해 8월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지난 3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기 수원 삼성종합기술원을 찾았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노광공정을 통해 D램 개발에 성공한 날이었다. 이 부회장은 신기술 현황을 보고받은 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미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한계에 부닥쳤다고 생각될 때 다시 한번 힘을 내 벽을 넘자”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세계 최초 기록

30조원이 투자된 삼성전자의 경기 평택 2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이재용 부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해 8월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30조원이 투자된 삼성전자의 경기 평택 2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이재용 부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해 8월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 부회장이 ‘반도체 초격차’ 달성을 위해 공을 들여온 경기 평택 제2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30일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시설인 평택 2공장에서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평택 2공장은 매머드급이다. 2018년 착공한 이곳은 연면적이 12만8900㎡로 축구장 16개 크기다. 투자금액만 30조원이 넘는다.

삼성전자는 이곳에서 EUV 노광공정을 적용한 3세대 10나노급(1z) LPDDR5 모바일 D램을 생산한다. 10나노급은 반도체 미세회로의 선로폭이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대라는 뜻이다. 같은 10나노급이어도 10나노 후반은 1y, 중반은 1z로 부른다. 앞서 삼성전자가 생산한 1·2세대 10나노 D램은 1y 제품이었다. 삼성전자가 EUV 공정을 적용해 선로폭을 더 줄였다는 의미다.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의 저전력 표준인 LPDDR5와 1z를 동시에 충족하면서 EUV 공정으로 D램을 제조할 수 있는 기업은 세계에서 삼성전자뿐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대’ 생산시설에서 ‘세계 최초’ 제품을 내놓는 셈”이라며 “평택 2공장 가동을 계기로 삼성의 ‘초격차 전략’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얇고 빨라진 D램으로 5G 공략

이번에 양산에 들어가는 3세대 10나노 D램은 5세대(5G) 이동통신 수요를 겨냥한 제품이다. 올 3월 삼성전자가 글로벌 고객사에 샘플로 공급한 1세대 10나노 D램보다 생산효율이 50% 높아졌다. 칩 용량은 16Gb(기가비트)로 전작(12Gb)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16% 개선됐다.

통상 모바일 D램은 몇 개 제품을 연결해 만든 패키지 단위로 납품한다. 새로 양산하는 D램을 활용해 16GB(기가바이트) 패키지를 제작할 때 필요한 칩은 8개다. 12개의 칩이 들어갔던 종전보다 두께를 30%가량 줄일 수 있다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

16GB 제품을 기준으로 초당 풀HD급 영화(5GB) 약 10편에 해당하는 51.2GB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나온 스마트폰엔 5G 통신칩, 멀티카메라 등이 빼곡하게 들어간다”며 “D램 패키지 두께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스마트폰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평택 2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모바일 D램만이 아니다. 위로 쌓아서 집적도를 높인 차세대 낸드플래시 V낸드, 초미세 공정을 활용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제품 등도 이 공장에서 생산한다. 낸드플래시와 파운드리 제품 생산라인은 내년 하반기 가동을 시작한다.

계획에 없던 파운드리 신설 ‘주목’

업계에서는 삼성이 평택 2공장에 10조원을 들여 파운드리 설비를 짓는 데 주목하고 있다. 2018년 삼성전자가 평택 2공장을 착공할 때만 해도 파운드리 설립 계획은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신설은 새로운 고객사를 다수 확보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7나노 EUV 기술을 적용한 IBM의 차세대 서버용 파워10 프로세서를 수주하는 등 고객사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평택 2공장 가동은 위기에 투자를 늘려온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이룬 첫 성과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반도체 사업장을 돌며 기술 주도권 확보를 독려했다. 지난해 4월 세계 최초 EUV 전용 생산시설인 경기 화성 V1라인 건설 현장을 찾은 것을 시작으로 반도체사업장을 순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던 올 5월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과거 불경기에 미국·일본 경쟁 업체가 투자를 줄일 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 메모리 반도체 1위가 됐다”며 “반도체 사이클이 하강 국면이던 2018년 평택에 세계 최대 공장을 짓기로 한 것도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