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사의를 밝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퇴진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한·일 관계의 전환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정치 리더십 변화가 한·일 관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동북아시아 지역의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다음 총리는 한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누가 일본의 차기 총리가 되든 아베 총리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한·일 관계가 바닥으로 떨어진 데는 역사수정주의적 관점에서 과거사를 미화하려 한 아베 총리의 책임이 적지 않다. 그는 일제 침략전쟁을 사실상 정당화하면서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일본 내 혐한 감정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기도 했다. 일본 주간지 다이아몬드가 “아베 총리의 가장 큰 외교 업적은 한국의 반일(反日) 선전을 걷어찬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이라며 “그의 사임을 가장 반기는 곳이 한국일지 모른다”고 보도한 것도 일본 내 혐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선 일본 측의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일본 정부에 변화를 요구하려면 우리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관계 악화의 책임이 일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불인정,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일본에 무역보복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일부 정치인은 반일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양국관계 악화를 부채질하기도 했다. 장관까지 지낸 여당 의원이 “우리나라 친일파와 토착 왜구들은 아베 총리가 물러나면 그 상실감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라고 비아냥댄 데서 그 수준과 실상을 엿볼 수 있다.

한·일 양국이 헐뜯기만 하고 상대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자국 정치에 이용하는 한, 관계 개선은 요원하다. 한·일 관계가 나빠질수록 이득을 보는 쪽은 중국과 북한뿐이란 사실을 서로 잘 알고 있다. 한·일 두 나라는 상호의존적인 경제관계를 위해서뿐 아니라 북한 핵무기와 중국의 패권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할 전략적 이유도 있다. 내달 중순께 이뤄질 아베 총리의 퇴임과 신임 총리 체제의 출범은 한·일 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두 나라 정치권이 다 함께 대승적 견지에서 변하려는 자세가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