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발짝 물러나
문 대통령은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뒤 정부가 약속한 협의체와 국회가 제안한 국회 협의기구를 통해 의료서비스 지역 불균형 해소와 필수 의료인력 강화, 공공의료 확충뿐 아니라 의료계가 제기하는 문제까지 함께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정한 대응’을 강조하던 이전 발언과 달리 의료계와의 협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막판 타결을 촉구했다.
의사들의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경북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등의 전공의 고발을 위해 현지조사에 들어가자 대구·경북지역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앞장섰던 이곳 교수들이 항의 시위를 했다. 보건복지부는 의사면허 실기시험 일정을 늦췄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따르면 올해 의사면허시험 응시 자격이 있는 의대생은 3172명이다. 이 중 89%인 2823명이 응시를 취소했다. 의사면허 실기시험은 9~10월, 필기시험은 내년 1월 7~8일이다. 갈등이 봉합되지 않으면 내년 배출되는 의사가 349명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정부 "의사 국가시험 재연기는 고려 안해"
본과 4학년 상당수 응시 취소
의대생들이 국가 면허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해서 구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의사 간 갈등 상황이 잘 봉합되면 추가 시험 일정을 잡고 시험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일정을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2000년 의약분업 때도 의대생들이 면허 시험을 거부해 응시율이 9%에 불과했지만 시험 일정을 한 달 정도 연기해 의대생이 대부분 시험을 봤다.이번엔 상황이 조금 다르다. 2000년에는 실기시험이 없어 일정 조정이 쉬웠지만 2009년부터 실기시험이 도입돼 두 달 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대 교수들은 “9월 안에 봉합되지 않으면 의대생들을 구제할 방법을 마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얘기했다.
의대생이 시험을 보지 못해 의사 인력이 배출되지 않으면 내년 대학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인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진다. 이후 이들이 전공을 선택해 레지던트가 될 때면 의사 부족이 극심해져 기피과에 의사가 안 가는 편중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으로 인력 부족이 심해지고 있는 군의관, 공중보건의료인 등의 인력 수급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당장 의대 입시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본과 4학년생뿐 아니라 다른 학년 학생들로도 수업거부 운동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기준 본과 4학년을 제외한 전국 의대생 1만5542명 중 91%인 1만4090명이 휴학계를 냈다. 이들이 단체로 유급을 당하면 내년 의과대학에서 교육받아야 하는 학생이 급증하고 이 때문에 신입생 정원 등이 바뀔 것이라는 의료계 전망이 나왔다. 실습 등이 많은 의대 교육 특성상 일정한 수준 이상의 인원을 갑자기 늘리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한 학년이 유급했다고 신입생 정원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내년 의대 입학정원은 변동사항이 없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이날 한희철 한국의대·의전원협회 이사장 등의 요청에 따라 의사 면허 실기시험을 1주일 연기하면서 1일 응시자는 8일, 2일 응시자는 9일로 실기시험 날짜가 순차적으로 바뀐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장기화돼 의대생 시험 거부가 계속되면 후유증이 상당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지현/김형호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