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주인공보다 존재감이 빛나고, 한 장면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를 두고 우리는 ‘신스틸러’라고 부른다. 신스틸러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쉽고 단순해야 한다. ‘화면을 훔쳐가는 사람’이라는 표현처럼 신스틸러는 맥락과 스토리에 관계없이 딱 한 장의 이미지만으로도 뇌리에 각인될 수 있어야 한다.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해도 좋을, 선명하고 간결한 외형으로 캐릭터의 성격까지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악역은 악역답게 무섭고 거칠고 사나운 이미지로 묘사되고, 조력자는 조력자답게 현명하고 기댈 수 있는 넉넉함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신스틸러들의 이미지는 개별 영화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을 넘나들면서 반복된다. 다시 말해 대표성을 띤 채 비슷해진다. 조직폭력배, 전문직 변호사, 재벌 2세, 심지어 동네 슈퍼 아줌마까지 우리는 수많은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들을 이미 알고 있다. 본명은 몰라도 얼굴만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배우들. 그들이 주는 친숙함은 톱스타 이상의 존재감이 있다.

오비라거의 새 광고 ‘오, 부드Love다’는 그런 점에서 영리하고 재치 있다. 주로 톱스타들이 출연해 청량감을 뽐내는 쪽으로 굳혀진 맥주 광고에서 톱스타 대신 신스틸러로 연기파 배우들을 기용했기 때문이다. 광고는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작된다. 어두운 창고 안 조직폭력배처럼 등장한 두 남자가 험악한 분위기로 서로를 마주보다가 달려 나간다. 한판 격투를 벌일 것처럼 팔을 휘두르던 그때, 밝은 화면으로 전환되며 맥주잔이 부딪치고 부드러운 거품이 파도처럼 찰랑거리며 넘친다. 그리곤 두 남자는 어느새 오비라거를 상징하는 마스코트 남색 곰돌이 품에 폭 안긴 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어지는 문구 ‘오, 부드Love다’.

반전의 재미를 창의적으로 활용한 이 광고는 신스틸러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역전시켜 곰돌이의 부드러운 이미지와 연결된다. ‘100% 몰트의 부드러운 맛’이라는 오비라거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반전의 스토리텔링이다.

다시 신스틸러의 특징을 하나 더 꼽자면 이미지를 비틀어 즐거움을 주기 쉽다는 것이다. 고정된 이미지가 강렬한 만큼 그걸 살짝만 변형시켜도 웃음이 배가된다. 폭력배처럼 세고 강한 인상의 두 배우가 부드럽고 푸근한 이미지로 연결될 때, 금세 곰돌이처럼 둥글둥글해진 두 배우가 푸른 곰돌이의 배를 쓰다듬을 때 그 이미지의 낙차가 주는 즐거움은 논리와 설득을 뛰어넘는다.

오비라거 ‘오, 부드Love다’는 익숙한 클리셰를 깨는 즐거움을 적어도 세 가지는 선사한다. 첫째 유명한 스타 배우를 쓰지 않았다는 점, 둘째 조폭에서 곰돌이로 스토리텔링의 반전을 선사하는 점, 마지막으로 언어유희가 주는 즐거움이다. 사실 이 광고의 스토리는 뜬금없고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생뚱맞게 느껴지진 않는데 비결은 바로 반전이 주는 유머다. 그리고 그 웃음의 핵심에는 곰돌이를 사이에 두고 몸을 부비는 두 남자 위로 큼지막하게 박히는 문자 ‘오, 부드Love다’가 있다.

영상 매체에서 문자는 활자의 의미보다 그림에 가깝다. ‘부드럽다’의 ‘럽’을 Love로 치환한 짧은 언어유희는 싸우는 사람들마저 화해시키고 서로 사랑과 정을 나누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오비라거의 부드러움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기억에 남는 건 오직 부드럽다는 인상과 곰돌이의 배를 쓰다듬고 있는 두 남자의 푸근한 표정이 전부다. 사실 그거면 충분하다.

송경원 < 영화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