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부동산 감독기구, 2차 재난지원금, 4차 추경'
이 모든 사안들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초기엔 안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가 결국에는 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 중심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있었다.

홍 부총리는 처음엔 네 개 사안에 대해 모두 반대했다. 그러다 막판에 언제 그랬냐는 듯 소신을 굽히고 찬성 쪽으로 선회했다. 대놓고 입장이 바뀐 걸 얘기할 수 없을 때엔 여당과 청와대에 못이기는 듯 꼬리를 내렸다. 홍 부총리가 이런 '용두사미'를 반복하자 관가에서는 '홍두사미'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부동산 감독기구, 1차 재난지원금 모두 '신중 모드'에서 급선회

홍 부총리는 최근까지 부동산 감독기구를 내켜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부동산 대책의 실효성을 위해 필요시 부동산시장 감독기구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홍 부총리는 '필요시'라는 문구에 더 주목했다.

그래서 지난달 20일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 출석해서 “(부동산) 감독기구를 만드는 것에 대해 협의 초기 단계고,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며 “개인적으로 감독기구를 설치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감독기구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불과 열흘만에 찬성 쪽으로 바뀌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상설 부동산 감독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부분 찬성의 뜻을 직간접으로 밝힌 영향이 컸다. 홍 부총리는 지난 2일 부동산시장점검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시장 교란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불법행위 대응반을 '부동산거래분석원(가칭)'으로 확대 개편해 이상거래 분석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의 입장이 바뀐 건 이 뿐만이 아니다. 1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놓고 그랬다.

홍 부총리는 1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거론되던 지난 3월부터 줄곧 "재난지원금을 줘야 하면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선별 지급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빚을 내지 않고 뼈를 깎는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충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4월 들어 '70% 지급'은 없던 얘기가 됐다. '4·15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여당의 힘에 눌려 대상은 전 국민으로 확대됐다.

2차 재난지원금도 반대하다 찬성으로 변화

2차 재난지원금에서도 1차 재난지원금 때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14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2차 재난지원금과 4차 추경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지난 6월 국회에서도 똑같은 취지로 발언했지만 홍 부총리의 소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27일 ‘2021년도 예산안’ 사전 브리핑에서 “4차 추경 여부는 코로나 확진자 증감 추이에 대한 판단,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의 격상 여부 등이 변수가 될 것 같다”며 입장이 달라졌음을 예고했다. 그러다 예산안 발표가 된 지난 1일 KBS ‘뉴스 9’에 출연해 2차 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에 대한 질문에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추가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상당수 공무원들은 홍 부총리의 입장 변화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홍 부총리도 국가 재정을 책임지는 '곳간지기'로서 재정건전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으려 하지만 정치권과 청와대의 힘에 밀려 뜻을 굽힐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주변 상황이나 권력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끝까지 경제 최고 수장으로서 소신을 지켜야 한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예전부터 경제 관료와 정치권, 청와대 인사 사이에는 이견이 있고 갈등이 있었다"며 "그 때마다 경제 부총리가 총대를 메고 끝까지 토론하며 적정선에서 대안을 찾았는데 최근 들어선 경제 부총리나 고위 공무원들 모두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수석을 설득하려 노력하지 않고 따라가는 모습만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